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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는 권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품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권위는 폭력적이었고 파괴적이었으며 비인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권위는 병든 권위였습니다. 성경은 권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앙공동체에 권위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사사기는 권위가 실종된 시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권위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따라 살게 됩니다. 그 결과는 혼돈과 공허죠. 권위는 계급이나 지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권위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성도들을 보호하며,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요구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권위가 사라지면 혼란이 시작되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보호받지 못하며, 영적 성장을 경험하는 일이 힘들어집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집중하며 헌신하는 모습도 보기어렵죠. 권위가 사라진 교회는 인간적인 모습을 띄게 됩니다. 성도들의 모임은 세상 사람들의 모임과 구별할
제직들이 말씀과 교회의 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제직들은 말씀과 교회의 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의 안수집사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교회법을 읽고 있습니다. 교회법을 읽는 이유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제직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교회의 법에 무지하면 교회를 바르게 건설할 수 없습니다. 상식을 따르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상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법은 필요하지 않겠죠. 법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마다 주장하는 상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할 때에 상식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고 무례한 일입니다. 누군가 말하는 상식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을 이야기 할 때에는 먼저 성경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교회의 법을 살펴야 합니다. 상식이나 인정을 앞세우게 되면 길을 잃을 수 밖에 없ㅅ습니다. 자기만의 상식이나 인정을 앞세워 교회를 혼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버리셨을까요?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성령이 일하시는 방식에 놀라게 됩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후 시작된 부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수천 명이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이런 일은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의 교회는 순식간에 유대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역전을 이루는데 성공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일대 개혁을 이루어내고 예루살렘을 복음으로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처벌도 가능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를 해산시키고, 사도들의 공회가 예루살렘과 유대를 이끌 수 있는 인적토대가 마련된 상태였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 장악을 시도했다면 예루살렘에 지상 천국이 건설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역사에 흔적이 남을 업적이 되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
말씀의 은혜로 성장하는 교회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2026년 우리 교회 주제는 "말씀의 은혜로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이 기록하는 사도들의 교회는 성장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성령이 임재한 교회에는 생명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성령이 일하시는 곳에는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도행전의 놀라운 성장은 말씀이 왕성해짐으로 나타나는 결과였습니다. 교회를 위해 선택된 집사들이 섬길 때 말씀이 왕성하게 되었다고 사도행전이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도행전 6:7). 교회의 모든 직분은 말씀이 왕성하게 되도록 일하게 된다는 것을 사도행전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들과 집사들이 함께 일할 때 말씀이 왕성하게 되었고, 말씀과 함께 일하는 성령의 은혜가 나타나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께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일하면 복종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매일성경으로 말씀 묵상하는 방법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2026년 우리는 새로운 일에 도전합니다. 온 교회가 함께 같은 말씀으로 묵상하며 매일의 삶을 살아갑니다. 말씀으로 성도의 삶이 가득찰 때 말씀으로 교회가 충만하게 됩니다. 말씀 묵상에 대해 처음 들었다고 말하는 분도 있을 수 있고, 묵상을 처음 해본다고 고백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 묵상은 결코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몇 가지 단계를 따라 하면 됩니다. 1. 기도로 시작합니다. 조용한 공간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매일성경을 펼치기 전에 먼저 기도하십시오. 묵상을 시작하는 기도는 짧고 간단합니다. "주여 나의 눈을 열어 주의 말씀을 보게 하시고, 나의 마음에 주의 말씀을 심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짧은 기도가 묵상의 문을 열어줍니다. 2. 매일성경을 펼치고 오늘 본문을 읽습니다. 읽을 때 작은 소리로 천천히 읽습니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고 정확히 읽는 데 집중하십시오
구주나심에 대한 어거스틴의 설교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고백록]으로 알려진 교부 어거스틴은 지금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기독교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으로 교회사에 남아 있습니다.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자들은 어거스틴의 설교와 저서를 참고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신학자이면서 경건한 설교자입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설교가 온전한 형태로 전해졌다면 교회가 유익을 얻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어거스틴의 설교는 일부가 전해지고 있고,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구주 탄생에 관해 남긴 설교 중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장들이 있어 소개합니다. "그분은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왜입니까? 짐승들의 먹이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천사들의 양식이신 분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여물이 되셔서, 우리가 구분을 먹고 영적인 배고픔을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짐승처럼 되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의 먹이가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
2026년에 달라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저는 말씀과 기도생활에 충실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은 성도의 의무이기 이전에 성도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생활과 기도생활을 배우지 못한 성도는 마치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군사와 같습니다. 기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군사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할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죠.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이 훈련되지 않은 신자가 신실한 성도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훈련하기 위해 2026년에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 합니다.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말씀 생활을 돕기 위해 매달 말씀 묵상을 위한 책을 교회에서 구입해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교회 말씀을 묵상을 위한 책은 성서유니온에서 출판하는 매일성경입니다.
12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매년 마지막 달이 되면 새로운 달력을 찾게 됩니다. 수첩도 하나 장만하게 되죠. 경기가 좋을 때는 무료로 나누어 주는 곳이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필요한 것을 직접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명을 우리 중심으로 말하면 비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소명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성공을 위해 살 수도 있고, 부를 위해 살 수도 있고, 자녀를 위해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기를 원하실까요?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생각한 후 글로 적어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소명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부름 받았음을 알고 섬기십시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교회의 일꾼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담임목사는 공동의회의 투표로 청빙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를 부르신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공동의회가 주의 뜻에 따라 일한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자신을 청빙한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주의 뜻 이루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진리를 선포하게 됩니다. 교회의 다른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당회가 교회 직분자들을 임명합니다. 그러나 직분의 주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교회의 직분은 주께 부름 받았음을 자각하고 주의 뜻 이루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직분자는 직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직분을 가볍게 생각하는 이유는 부르신 주를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르신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직분을 무겁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귀하게 생각하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
부드럽게 말해도 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최근에는 기업에서도 말에 대한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말을 잘해야 소통이 이루어지고, 소통이 이루어질 때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옷을 잘 입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모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옷맵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말맵씨입니다. 말을 부드럽게 잘하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말은 소통을 목적으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 있어서 참지를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만 그 말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말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말을 합니다. 소통을 이루는 말은 세 번째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은 첫 번째 말입니다. 지가 말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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