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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심리적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6월 6일
  • 2분 분량



공감을 요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불안 지수가 높은 사회 환경의 영향이 큽니다. 가족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을 때에는 공감에 대해 지금처럼 많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공감에 목말라 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평소에 적절한 공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감정에 공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공감은 중요한 정서적 자질입니다. 그러나 공감이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감정을 이해해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어두었던 비밀한 이야기까지 쏟아냅니다. 나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믿고 한 이야기들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이비 종교는 공감을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처음 만나면 무조건적으로 공감해줍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조건적 공감을 경험하게 되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되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본색을 드러냅니다. 공감을 통해 확보한 전적인 신뢰와 의지하는 습관은 그때부터 그들의 무기가 됩니다. 이때부터 심리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심리적 통제가 시작될 때에는 이미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공감을 경험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공감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심리 상담의 첫 단계는 공감입니다. 사이비 종교의 공감과 심리 상담가의 공감은 목적이 다릅니다. 심리 상담가의 공감은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만 사이비 종교는 심리적 통제를 목적으로 합니다. 심리 상담가는 공감을 통해 신뢰를 형성한 후,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변화를 시도하도록 격려하죠. 심리 상담가가 공감을 통해 확보한 신뢰는 이 순간에 힘을 발휘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힘을 제공해줍니다.


변화를 거부한 채 공감만 요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거부한 채 공감만을 요구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의 정서적 에너지를 고갈시킵니다. 공감을 통해 형성된 신뢰가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합니다.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의 동반자가 필요한 겁니다. 이런 상태에 이른 사람의 정서에 공감하는 것은 엄청난 정서적 노동입니다. 전문적인 심리 상담가들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죠. 전문적인 훈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공감을 요구받고 있다면 피해야 합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공감은 심리적 통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공감해주는 사람이 공감을 악용할 수도 있고, 공감을 요구하는 사람이 공감을 악용할 수도 있습니다. 공감이 절대 선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공감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할 능력입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면 우리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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