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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동기 | 창세기 4:8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4월 25일
  • 2분 분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사람의 상태는 비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를 타락이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에 다 담기지 않는 비극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여인을 보고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노래했던 아담이, 자신을 타락의 길로 이끈 것이 하와라고 비난할 때 산산히 부수어진 관계를 우리가 목격하게 됩니다. 한 몸이었던 사람의 관계가 파탄난 것은 앞으로 펼쳐질 비극의 전조에 불과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한 어머니와 한 아버지를 둔 형제요 가족이었습니다. 한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았고,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으니 가족이었고,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으니 식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불편한 감정이 둘 사이에 스며들었고, 결국에는 두 사람이 도무지 건널 수 없는 골짜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견딜 수 없었고, 아벨은 가인을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은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가인이 동생 아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번역본에는 “우리가 들로 가자”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빈 들로 유인했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죽였습니다. 가인의 살인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였습니다. 아담이 아내 하와의 심장에 날카로운 비난의 말을 겨누었다면, 가인은 아우 아벨의 심장을 날카로운 도구로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집은 비극적인 슬픔에 잠식되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유를 성경이 밝히고 있습니다. 살인의 동기는 시기심이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가인은 악한 자였고 아벨은 의로운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시기심이 불처럼 일어나 가인을 집어삼켰습니다.


시기심은 부러워하는 마음과 다릅니다. 부러워하는 마음은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은 나보다 나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고통스러워해, 그 사람을 파괴하려는 강력한 의지로 구체화됩니다. 시기심은 매우 파괴적인 정서로, 시기심을 품은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시작해 시기하는 대상을 파괴하기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시기심을 마음에 들인 후에는 시기심이 초래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막기가 어렵습니다.


시기심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시기심은 내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시기심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집중하게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지만 시기심의 충동을 받게 되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하게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있고, 그것이 귀하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시기심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것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을 가진 사람은 끝없이 고통받기 때문에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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