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죄가 우리 안에 살아있다는 가장 큰 증거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6월 6일
  • 2분 분량



경건함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한 감각이 깨어있습니다. 반면에 경건에 대한 어떤 열망도 없는 신자들에게서는 죄에 대한 감각이 빌견되지 않습니다. 죄가 신자의 마음 속에 살아서 날뛰고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강력한 현상은 죄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감각입니다. 죄는 사람들의 눈을 아둡게 해 죄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죄가 가진 가장 큰 위력입니다.


죄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은 채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누군가 그 일은 죄입니다라고 말하면 당장 나타나는 반응이 있습니다. 변명과 합리화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 주위 사람 때문에, 상황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합리화합니다. 괜찮아.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같은 행동을 했을거야라고 합리화합니다.


변명을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석득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책임을 돌리죠.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 나를 비난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말이 변명입니다. 변명은 결국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를 비난하지 말고 내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자극한 사람과 상황을 비난하라고 사람들의 시선을 교란시키는 행위가 변명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대부분 변명거리를 찾습니다.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무으식적인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기럴듯한 말로 포장합니다. 합리화를 통해 얻고자하는 결과는 단순합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 그건 불가피한 선택이었어.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하는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합리화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존재자체가 무너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변명과 합리화는 우리 안에 죄가 활개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변명과 합리화는 회개로 나아가는 길을 차단해버립니다.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동안 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집니다.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 사라지고나면 회개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남는 것은 비난할 대상과 여전히 사랑스러운 자신 뿐입니다. 죄는 이처럼 우리의 인식을 왜곡합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도록 시력을 빼앗아 버립니다. 죄가 그 영혼을 완전히 잠식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성도들은 죄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며,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온전히 모든 죄가 자신의 선택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합니다. 용서를 구하고, 죄에서 벗어나 의의 삶을 갈 능력을 구합니다. 경건한 성도는 회개의 능력을 믿습니다. 회개야 말로 죄를 죽이는 가장 강력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좌절 내구력이 필요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우리 자녀들은 자라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배워야 할 과목도 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학교 교과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조선미 교수는 "좌절 내구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좌절 내구력"은 자신의 욕구가 즉시 충족되지 않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방해가 있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

 
 
 
공감은 심리적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공감을 요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불안 지수가 높은 사회 환경의 영향이 큽니다. 가족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을 때에는 공감에 대해 지금처럼 많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공감에 목말라 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평소에 적절한 공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감정에 공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끄는 사람에게 탁월한 자질이 요구되듯, 따르는 사람에게도 탁월한 자질이 요구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교회의 직분자들은 이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회중들은 따르는 사람이 되겠죠. 따르는 사람들은 이끄는 사람에게 탁월함을 요구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탁월함은 이끄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덕이 아닙니다. 따르는 사람에게도 탁월함이 요구됩니다. 탁월함을 가진 사람이 직분자가 된다고 해서 교회가 저절로 잘되는 일은 없습니다. 회중들이 탁월함을 가지고

 
 
 

댓글


  • 블로그-로고-고화질
  • Youtube
  • Instagra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