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하나님의 사람은 시련을 통해 성장합니다|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7월 11일
  • 2분 분량



우리는 고통과 상처 없는 삶을 복되다고 말합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기를 소망하죠. 그러나 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온실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땅이 말라버릴 때도 있습니다. 고통과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없죠. 모든 사람이 고통을 경험하고 있고 상처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다만 고통과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고통과 상처가 성장의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할 때마다 견디는 힘이 커지고, 상처를 받을 때마다 지혜가 자랍니다. 언덕 위 나무가 거친 바람과 가뭄을 견디며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땅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거친 바람과 매서운 가뭄을 견뎌내는 힘이 있습니다. 마을과 역사를 같이해온 나무도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작은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람과 가뭄 덕분이었습니다. 바람과 가뭄을 견디기 위해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었고, 그 덕에 긴 세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은 이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5장 3-4절도 같은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물이 풍성한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약속의 땅은 물이 부족한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가나안은 갈대아 우르나 이집트와 비교하면 광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같은 곳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것은 연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인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윗은 청소년 시절에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양을 치던 목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끄는 왕이 되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후 긴 세월 동안 광야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시련을 경험했고, 광야에서 경험한 시련이 다윗을 성숙하게 했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광야는 한 사람이 참 왕이 되기 위해 훈련하는 장소였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훈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성숙한 사람을 만드는 훈련에 시련은 필수 과목입니다.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좌절이 사람의 그릇을 키워줍니다. 시련을 견디고 좌절을 딛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지금 시련의 때를 보내고 있다면 기뻐하십시오. 지금 당신은 강해지고 있고, 그릇이 큰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사용해서 우리를 성숙하게 하십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선지자가 말하는 그 날에 담긴 의미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는 "그 날"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 날"은 미래의 어떤 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날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 속에 등장하는 그 날 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면 성경에 담겨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은 인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칭호에 담긴 의미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다양한 호칭으로 부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호칭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주라는 호칭이 처음 성경에 등장한 것은 사무엘서입니다. 사무엘상 1장 3절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후 주전 800-600년 사이에 활동한 선지자들의 글에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호칭이 자주 발견됩니다. 두 시대에

 
 
 
웃시야는 오만한 폭군이었을까? 경건하고 현명한 군주였을까?|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웃시야는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 오십이 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웃시야가 왕이 될 때 그의 곁에는 선지자 스가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는 웃시야 왕의 멘토가 되어 선한 길로 인도했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선지자의 지도를 받으며 경건하고 신실한 군주로 살아가게 됩니다. 웃시야가 다스리는 동안 국가질서가 확립되었고, 농업 생산성도 향상되

 
 
 

댓글


  • 블로그-로고-고화질
  • Youtube
  • Instagra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