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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조건 | 창세기 4:1-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4월 18일
  • 2분 분량

창세기를 가리켜 "시작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는 성경의 첫번째 책, 성경을 여는 시작의 책이라는 의미가 이 말에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를 시작의 책이라 말할 때 이 말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창세기가 모든 것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4장은 예배의 시작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살인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경험과 살인의 경험은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는 두 경험이 한 곳에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 또한 역사입니다.

창세기 4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아담과 하와가 얻은 자녀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언어로 말하면 예배를 드린 겁니다. 가인과 아벨이 어떻게 예배하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범죄하여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가 예배하는 삶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배는 타락 후 즉시 시작된 일로, 삶의 본질이 되었습니다. 예배가 삶의 본질이 되었다는 말은 예배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자신이 땀 흘려 일한 결과물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드린 곡물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양의 첫 새끼 그들이 긴 시간 땀 흘려 일해 얻은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 것에는 소모된 시간과 땀이 깃들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돈을 피같다고 말합니다. 피같은 돈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얻기 위해 소모한 시간과 흘린 땀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모한 시간과 흘린 땀만큼의 생명을 댓가로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 바로 월급니다.

피같은 돈이라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힘겨운 노동으로 얻은 것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피, 곧 우리의 생명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생명 대신 우리가 힘써 일해 얻은 것 중 일부를 드릴 때, 그것을 우리 자신의 생명을 드린 것으로 받아주시는 겁니다. 생명을 드려야 하지만 소유의 일부를 드릴 때 생명을 드린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주시니 은혜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것은 받으시지만 거룩하지 않은 것은 거부하십니다. 제물의 정함과 부정함은 무엇이 결정할까요? 양의 첫 새끼는 정하고 곡물은 부정할까요? 정함과 부정함은 제물의 종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에 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제물의 정함과 부정함을 결정하는 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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