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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15:35-4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2025년 6월 28일
  • 2분 분량



부활에 대해 이야기 하면 다양한 질문이 쏟아집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한 일이 있습니다.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었지만 아들 없이 아내를 두고 죽었습니다. 그 여인을 둘째가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둘째도 죽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일곱 형제가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부활이 있다면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이것이 사두개인의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답은 단순합니다. "너희가 성경을 오해하였구나"

고린도교회에도 부활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날 사람은 어떤 몸으로 부활합니까?" 이 질문에 담겨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이 되는데, 이미 흙이 되어 버린 사람의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심이 이 질문 속에 있습니다. 의심하며 묻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답이 이어집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씨앗을 비유로 부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씨는 형체를 잃어버립니다. 형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씨가 깨어져 죽은 후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씨가 깨어진 후 새로운 형체가 나타났습니다.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형체는 땅에 속한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서 상속받은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같은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형체는 짐승의 형체와 다릅니다. 구별이 됩니다. 아담에게서 받은 형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에게서 받은 형체를 가지고 심은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형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구절을 보십시오. 42~43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아담에게서 받은 형체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특징은 부활의 날 얻게 될 형체와 비교할 때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담에게서 받은 형체는 썩을 것이고, 욕된 것이며 약한 것입니다. 부활의 날 우리가 얻게 될 형체는 썩지 아니하며, 영광스러우며 강합니다. 부활의 날 우리가 얻게 되는 형체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형체와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한 형체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형체는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48~49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흙에 속한 이는 첫 사람 아담을 가리키고, 하늘에 속한 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아담의 몸을 입고 산 믿음의 사람은 부활의 날 예수님과 같은 형체를 입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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