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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내구력이 필요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6월 13일
  • 2분 분량



우리 자녀들은 자라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배워야 할 과목도 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학교 교과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조선미 교수는 "좌절 내구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좌절 내구력"은 자신의 욕구가 즉시 충족되지 않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방해가 있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일상적인 평온함을 회복하는 능력입니다.


좌절을 경험하지 않고 자라는 아이는,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좌절 내구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좌절을 경험할 때 부모가 즉시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주게 되면, 자녀는 좌절 내구력을 키울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조선미 교수는 지나친 공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감정에는 공감하되 행동은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감의 말은 하루에 두 번이면 충분하다고 그 회수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조선미 교수는 자녀를 설득하려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부모가 자녀를 설득하려고 하면, 자녀는 부모와 자신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훈육이 어려워진다고 말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로 지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는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내 아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매우 단순한 사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내 욕구는 즉시 충족되어야 만족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한 채 살아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훈육하는 어른입니다. 부모가 어른의 역할을 포기하고 친구가 되려고 하면 자녀가 안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데 어려움이 생깁니다. 자녀 양육은 일상의 일부입니다. 중요한 일이지만, 지나친 의미를 부여해서, 부모의 삶의 중심을 자녀가 차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도 자신의 삶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부모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자녀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자녀가 불안이나 좌절을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십시오. 그래야 좌절 내구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지나친 개입이 우리 자녀들을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면서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자녀를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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