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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방법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저는 하남교회의 위임받은 목사로서 개혁주의 신학의 정통성과 청교도적 영성을 신앙의 두 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남교회가 신학적으로 정통성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비적 영성에 대한 체험도 공유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건전한 신학과 신비적 영성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둘 중 어느 한 가지만 붙드는 것은 교회를 매우 약하게 만듭니다. 바른 신학과 깊은 영성을 함께 추구할 때 교회는 안전합니다. 청교도들은 고난주간을 특별히 보내려고 힘썼습니다. 고난 주간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다음 날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신 시간까지 이어집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주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금요일 저녁에 성찬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날을 거룩한 금요일이라고 부르며 특별히 금식하며 보내는 어른들도 있었습니다. 고난 주간에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신 고난을 시간 순서를 따
왕과 사는 남자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불황을 맞아 문을 닫는 극장이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영화계도 불황을 피해가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이니, 영화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게 만든 영화가 나왔습니다. 비극적인 생을 살다간 단종의 마지막 생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최근 화제입니다. 장항준 감독은 이 영화로 거장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단종은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어린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어린 왕은 자신의 자리를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있었지만 왕을 지키기에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왕위를 넘겨 주어야 했고, 궁을 떠나야 했습니다. 단종이 궁을 떠나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기록이 많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운 것이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입니다. 어린
사경회 때 주실 말씀을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사경회는 한국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전통입니다. 사경회라는 말은 성경을 살피고 연구하는 모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경회는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오직 성경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사경회는 전통은 구약성경에서도 발견됩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성벽을 재건한 후 광장에 모였습니다. 에스라가 성경을 들고 서서 읽고 가르칠 때 백성들이 듣고 울었습니다. 사경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리는 계시의 책입니다. 기록하여 주신 책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채울 때 신앙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신앙 성장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될 때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들은 날마다 자라야 합니다. 자라기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크고 넓으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매일 성
말은 힘이 있습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물리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죠. 말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에는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실 수 있고,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창조하시는 하나님은 말을 사용해서 그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사람의 말에도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하나님의 말과 같은 전능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의 말은 쇠를 녹이는 힘이 있다는 옛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말을 삼가하고 조심합니다. 자신의 말이 죽이는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하는 거짓말이나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말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말이 상황을 왜곡하고 불신을 조
40대가 많아지는 은혜를 주옵소서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한국교회 인구동향을 살펴보면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40대부터 그 수가 급격히 적어지는 현상을 보이는데, 20대부터는 그 감소폭이 더 커집니다. 수적 감소 현상이 40대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가진 독특함은 30대가 많다는 것인데, 자연스럽게 4세 미만 아동의 수도 평균 이상으로 많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그러나 40대의 경우에는 평균보다 수가 적습니다. 40대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위기의 시기라 할 수 있죠. 직장에서의 생활을 더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여기에서 멈추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50대와 30대 사이에 끼어 자기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힘겨움도 있습니다. 50대와 30대는 완전히 다른 세대이며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세대가 40대입니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없죠.
우리가 기도해야 할 성장이란...|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지난 주일 오후 성장 위원회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 중에 목사가 말하는 성장이 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적 성장과 수적 성장 중 어느 것을 말하는 것이냐는 의미였습니다. 그 질문을 받고 저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동안 칼럼을 통해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는데 전달이 잘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성장은 질적 성장과 수적 성장 모두입니다. 질적 성장이 없는 수적 성장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수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질적 성장은 허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질적으로 성장하면 수적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수적 성장이 질적 성장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질적 성장은 수적 성장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창조의 원리입니다. 질적 성장을 위해 수적 성장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매 주, 매 년, 수십 년 동안 같은 사람들
교회 성장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교회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품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생명의 원리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체인 교회는 성장하거나 쇠퇴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멈추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정체는 쇠퇴로 이어지는 길일 뿐입니다. 오래 정체 되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생명체는 결국 소멸하게 됩니다. 교회도 성장하지 않으면 어느 날 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가 모두 좋은 교회는 아닙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성장은 건강한 성장입니다. 기형적인 성장이 있습니다. 생명 원리를 따르지 않는 성장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기형적으로 성장한 교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 원리를 따르는 건강한 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명원리를 따라 성장할 때 교회다운 교회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은 두가지 기준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적 성장과 질적 성장입니다. 우리는 대부
교회에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는 권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품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권위는 폭력적이었고 파괴적이었으며 비인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권위는 병든 권위였습니다. 성경은 권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앙공동체에 권위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사사기는 권위가 실종된 시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권위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따라 살게 됩니다. 그 결과는 혼돈과 공허죠. 권위는 계급이나 지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권위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성도들을 보호하며,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요구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권위가 사라지면 혼란이 시작되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보호받지 못하며, 영적 성장을 경험하는 일이 힘들어집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집중하며 헌신하는 모습도 보기어렵죠. 권위가 사라진 교회는 인간적인 모습을 띄게 됩니다. 성도들의 모임은 세상 사람들의 모임과 구별할
제직들이 말씀과 교회의 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제직들은 말씀과 교회의 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의 안수집사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교회법을 읽고 있습니다. 교회법을 읽는 이유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제직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교회의 법에 무지하면 교회를 바르게 건설할 수 없습니다. 상식을 따르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상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법은 필요하지 않겠죠. 법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마다 주장하는 상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할 때에 상식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고 무례한 일입니다. 누군가 말하는 상식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을 이야기 할 때에는 먼저 성경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교회의 법을 살펴야 합니다. 상식이나 인정을 앞세우게 되면 길을 잃을 수 밖에 없ㅅ습니다. 자기만의 상식이나 인정을 앞세워 교회를 혼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버리셨을까요?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성령이 일하시는 방식에 놀라게 됩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후 시작된 부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수천 명이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이런 일은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의 교회는 순식간에 유대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역전을 이루는데 성공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일대 개혁을 이루어내고 예루살렘을 복음으로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처벌도 가능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를 해산시키고, 사도들의 공회가 예루살렘과 유대를 이끌 수 있는 인적토대가 마련된 상태였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 장악을 시도했다면 예루살렘에 지상 천국이 건설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역사에 흔적이 남을 업적이 되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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