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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 | 마태복음 5:13-16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마태복음 5장은 산상보훈의 첫 부분입니다. 산에서 가르치신 내용을 마태복음은 한 곳에 모아 놓았고, 우리는 이를 산상보훈이라고 말합니다. 산에서 가르치신 보석같은 가르침이라는 의미죠. 산상보훈은 여덟가지 복으로 시작해서 소금과 빛의 비유로 연결됩니다. 13절과 14절은 일종의 선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소금이 되어라, 너희는 빛이 되어라’ 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일어난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선언입니다. 소금은 짠 맛을 내고 빛은 어둠을 밝힘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입니다. 하나님은 맛을 낼 필요가 있는 곳에 제자들이 보내시고, 어둠을 밝혀야 할 때 제자들을 높이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내는 맛과 빛은 무엇일까요? 이를 설명하는 구절이 16절입니다. 제자들이 내는 맛과 빛을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말로 표현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야고보서는 믿는 신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야고보서가 강조하는 것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은 삶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야고보서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삶으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 하기도 하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라는 말씀은, 삶으로 표현되지 않는 신앙은 헛것이라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야고보서가 강조하는 삶, 즉 행함 중에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3절에서 6절 말씀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생명을 살리는 교제 | 사도행전 2:41-4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추수 감사주일에 새생명 축제가 있습니다. 제가 담임 목사가 된 후에는 처음 하는 일입니다만은 이전에는 종종 이웃들을 초청해 복음 전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전도는 교회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전도는 사명이다’라는 표어를 걸고 전도에 집중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저도 전도가 교회가 감당해야 할 본질적인 사역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겠죠. 그러나 전도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다양성에 대해서도 저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전도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성자이신 그리스도는 영혼 구원을 위해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자께서 이루신 십자가 구원을 믿게 하시려고 전도자들을 보내시며 각 사람들의 마음에 임하셔서 죽어있는 영혼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구원의 역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가치가 없는 성경일까?|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우리 교회의 신앙은 종교개혁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의 신앙과 삶을 가치있게 평가합니다. 종교개혁의 깃발을 흔든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가리켜 “지푸라기 같은 성경”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중요한 성경으로 취급했지만 야고보서는 은혜가 아니라 행위를 의지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사역 후반기에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같은 성경입니다. 야고보서도 성령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이기 때문에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다른 진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강조하는 지점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진리를 알게 됩니다. 반면에 야고보서를 읽으면서 구원받는 믿음은 행함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는 진리도 깨닫게 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함께 할 수
하나가 되면 복음이 전해집니다 | 요한복음 17:21-23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기도 중 일부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라고 하면 주기도문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우리는 "주기도문"이라고 부릅니다. 주기도문을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직접 성부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도 기록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요한복음 17장 중 한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성부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로,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고난받으시기 전에 올려드린 기도로 그 기도에는 제자들과 교회를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부분은 제자들과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제자들과 교회를 위해 기도
사사시대 언약백성들이 부패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사사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사사기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레위인으로 표현된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난 두 사건은 사사시대의 삶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는 두 사건을 통해 영적 무감각과 도덕적 타락이 어느 정도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약백성들의 삶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언약백성들이 이처럼 신속하게 부패하고 타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사기는 한 가지 이유를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았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법으로 삼아 다스리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삼아 다스리는 왕이 없었습니다. 왕이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그 말씀을 기준으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사사들이 있었지만 사사들의 존
니므롯의 꿈과 하나님의 뜻| 창세기 11:1-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바벨에 건설된 것을 우리는 탑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것은 탑이 아니라 도시입니다. 바벨은 하늘까지 닿을 듯 높이 건설된 도시였습니다. 이처럼 높은 도시를 계획한 이유는 흩어짐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니므롯은 모든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살 수 있는 도시를 꿈꾸었고, 그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했습니다. 노아의 때에 있었던 홍수가 밀어닥친다 하더라도 물에 잠기지 않을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니미롯의 계획이었습니다. 니므롯은 남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는 무력이 있었고, 사람들을 조직해 나라를 시작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니므롯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은 창조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게 됩니다. 니므롯은 싸움을 잘 하는
삼손을 사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사사기는 사사들이 다스렸던 시대를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았던 시대"라고 평가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았던 사람들 중에 사사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사사기는 감추지 않습니다. 사사들은 백성들이 완전히 믿고 의지할 정도로 성숙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약점이 많고, 미숙하며, 허물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사들 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삼손입니다. 삼손은 다른 사사들과 달리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구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평생의 나실인으로 구별하셨습니다. 나실인이면서 사사인 삼손에게 맡겨진 일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십 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 아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특별히 구별된 사람이었지만 가장 무책임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나실인으로 구별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정결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
어떤 삶을 꿈꾸십니까? | 창세기 10:1-3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창세기 10장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계보 중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라고 기록함으로 시작합니다. 기록의 순서는 야벳, 함, 그리고 셈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의 출생 순서는 셈 함 야벳이지만 복보의 기록 순서는 야벳, 함, 셈 순서로 이어집니다. 창세기는 계보를 기록할 때 중요한 것을 가장 나중에 기록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창세기 10장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종족과 나라가 이루어진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5절이 이렇게 기록하죠.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20절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31절도 같은 정보를 전합니다.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성경은 모든 민족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
입다는 자신이 서원한 것을 지켜야 했을까?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사사기 11장은 충격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 나가면서 서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신다면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처음 맞이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암몬의 항복을 받고 돌아오는 입다를 영접한 사람은 그의 딸이었습니다. 그 순간 입다는 한탄합니다. "네가 나를 참담하게 하는구나. 그러나 여호와께 한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 입다는 결국 딸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시편 15편 4절은 서원한 것은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서원한 것은 손해가 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성경 구절을 더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서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서원에 대한 가르침 중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가 서원한 것을 아버지가 무효화할 수 있고, 아내가 서원한 것을 남편이 무효화할 수 있습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서원한 것을 듣고 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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