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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의 시작 | 창세기 8:20-2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부패한 세상에 대한 심판이 끝났고 방주의 문이 열렸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모든 짐승들이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가 만난 세상은 하나님의 동산과 같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처음 창조하신 하나님의 동산에는 죄가 없었지만, 노아와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에는 여전히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며 완전한 사람이었지만,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배에서 나온 노아가 처음 한 행동을 보십시오. 새 역사를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노아가 한 첫번째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20절이 그 일을 기록합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성경은 노아가 제사를 드릴 때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제단을 쌓았다는 표현을
이사야서를 성경의 축소판 혹은 제 5복음서라고 부르는 이유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우리는 이사야서를 성경의 축소판 혹은 제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와 구속사적 구조가 이사야서 한 권에 다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약 서른 아홉권 신약 스물일곱 권으로 전체가 육십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사야서 역시 전체가 육십육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사야서 전반부는 일장부터 삼십구장까지이며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과 율법에 의한 정죄, 그리고 죄로인한 세상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사야서 후반부는 시십장부터 육십육장까지로 스물일곱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너희는 위로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해 메시야의 고난과 죄 용서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과 구원을 다루고 있는 신약 성경의 주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타락으로 시작해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마무리되는 성경의 거대한 구속사적 서사가 이사야
기억하시는 하나님, 기다리는 노아 | 창세기 8:1-1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날은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열이렛날이었습니다(7:11). 그 날 큰 깊음의 새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습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다 터져나왔고, 땅이 물에 짐기게 되었습니다. 비는 사십 일 동안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물이 땅을 완전히 덮고 있었던 기간은 백오십 일이었습니다(7:24). 노아가 배에서 온 것은 육백일 년 둘째 달수무이렛날입니다(8:14-15). 그러니까 노아가 배에 머물러 있었던 시간은 일 년 하고도 십 일이었습니다. 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부패한 땅을 심판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 "기억한다"고 번역된 단어를 이전
기도하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앤드류 머레이는 [기도가 전부가 되게하라]에서 기도하지 않는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며 부담스러운 요청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고백해야 하는 사람은 목사와 같은 교회의 직원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성도는 기도하지 않는 죄와 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기도하지 않는 죄와 싸우는 것이 시작입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연약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없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깊고 지속적인 기도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 창세기 7:1-24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노아는 백년 가까운 시간을 거대한 배 만드는 일에 온전히 소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배를 만드는 시간은 고단하고 고독했습니다. 육체적 고단함보다 노아를 괴롭힌 것은 사회적 고립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배 만드는 일을 마무리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배가 완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 언덕 위에 거대한 배가 완성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그 배를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놀랐고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 가족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 데려와 함께 하라. 칠 일이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해 사십 일 동안 지속되어 온 땅이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명 있는 것이 죽게 될 것이다." 배를 만들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다시 노아에게 임했습니다. 이번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
선지자가 말하는 그 날에 담긴 의미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는 "그 날"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 날"은 미래의 어떤 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날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 속에 등장하는 그 날 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면 성경에 담겨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은 인간의 모든 교만이 무너지는 심판의 날입니다. 고대 근동의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무력과 지혜를 의지했습니다.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 제국을 건설한 자들은 하늘까지 높아졌습니다. 제국의 건설자들은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습니다. 그 날은 높아진 인간의 교만이 철저히 낮아지는 날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을 대적해 높아진 모든 것은 낮아지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 만백성을 다스리시는 주이십니다. 그 날은
구원받는 믿음이란?| 창세기 6:13-2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인격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라는 가르침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사람이 되기까지 낮아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라는 가르침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전적인 신뢰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전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 앞에 의롭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의 의로움과 완전함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에 노아의 발길이 머믈렀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때 노아도 함께 슬퍼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노아의 삶은 하나님과 깊이 연
선지자가 말하는 그 날에 담긴 의미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는 "그 날"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 날"은 미래의 어떤 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날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 속에 등장하는 그 날 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면 성경에 담겨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은 인간의 모든 교만이 무너지는 심판의 날입니다. 고대 근동의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무력과 지혜를 의지했습니다.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 제국을 건설한 자들은 하늘까지 높아졌습니다. 제국의 건설자들은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습니다. 그 날은 높아진 인간의 교만이 철저히 낮아지는 날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을 대적해 높아진 모든 것은 낮아지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 만백성을 다스리시는 주이십니다. 그
부패한 세상을 사는 의인 | 창세기 6:9-1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세상에 사람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나타난 보편적인 현상은 죄였습니다. 예배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무너졌고, 문명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문명이 이루어낸 눈부신 발전은 인류를 의의 길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인류는 이전보다 더 자기중심적인 상태가 되었고, 자기 욕망에 더 충실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풍족했지만 굶주리는 사람은 더 많아졌습니다. 이익을 독점하려는 야심가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상태를 11절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부패하다는 말은 변질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 모습을 잃어버릴 때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이성과 감정의 의지는 부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형상이 훼손되었습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온전하게 느끼며, 선한 것을 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칭호에 담긴 의미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다양한 호칭으로 부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호칭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주라는 호칭이 처음 성경에 등장한 것은 사무엘서입니다. 사무엘상 1장 3절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후 주전 800-600년 사이에 활동한 선지자들의 글에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호칭이 자주 발견됩니다. 두 시대에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시대는 블레셋의 위협을 비롯한 주변 나라들의 침략과 지배가 반복되었고, 주전 800년 이후 선지자들의 시대에도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만군"이라는 말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열방의 군대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나라의 군대 뿐 아니라 천상에 있는 천군과 천사들을 포함하는 말이 "만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이 말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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