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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후 교회를 생각하고 준비합시다 | 디모데후서 2:1-3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기록한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 중 가장 마지막 성경이 바로 디모데 후서입니다. 디모데 후서를 기록할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었는데, 그 때에는 연금 상태였습니다. 움직임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고, 순교를 예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유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유언장의 수신자가 ‘디모데’입니다. 디모데후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의 황제는 폭군 네로였습니다. 네로에 의해 시작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 중에는 신앙을 버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사역에
웃시야는 오만한 폭군이었을까? 경건하고 현명한 군주였을까?|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웃시야는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 오십이 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웃시야가 왕이 될 때 그의 곁에는 선지자 스가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는 웃시야 왕의 멘토가 되어 선한 길로 인도했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선지자의 지도를 받으며 경건하고 신실한 군주로 살아가게 됩니다. 웃시야가 다스리는 동안 국가질서가 확립되었고, 농업 생산성도 향상되었습니다. 황무지에 우물을 파서 가축을 기르고 작물을 가꾸었습니다. 군사적으로 탁월해 블레셋과의 전투에 연이어 승리해 다윗과 솔로몬의 때의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외교력을 발휘해 암몬으로부터 조공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요새를 건설해 국경을 튼튼히 했고, 삼십만에 이르는 정예 병사를 양성해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습니다. 웃시야가 다스리는 동안 유다는 군사적 안정을 기반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웃시야 왕의 다스림으로 인해 유다는 다윗과 솔로몬 이후 가장 번영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백
세속화를 조심하십시오 | 창세기 6:1-4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져 역사를 이어가기 시작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문명의 기초를 만들었고, 아담과 셋으로 이어진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하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종류의 삶에 현저한 차이가 생겼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쌓은 건축물은 점점 견고해졌고 새로운 농기구를 개발해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예배하는 공동체를 형성해 역사를 이어가던 셋의 후손들 중에 문명화된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견고한 건축물과 높은 생산성에 기반한 풍요로운 삶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동맹을 계획했습니다. 이때 일어난 일을 1-2절이 기록합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구별된 삶을 살던
이사야서가 말하는 남은 자는 어떤 사람일까?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이사야서 1장 9절에 "생존자"라는 단어는 "남은 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남겨진 무리" "피한 자"등으로 표현된 단어들은 "남은 자"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남은 자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남은 자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유다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죠.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벌하고 다시 정결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심판을 통과하고 남은 자들은 정결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고 남은 자들은 거룩한 씨와 그루터기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사야서 6장 13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아버지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 누가복음 15:11-3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이 본문으로 전해진 말씀을 여러 번 들었을 수 있습니다. 탕자비유로 널리 알려진 이 성경 말씀을 탕부비유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탕자라는 말은 아버지의 소유를 허비해 버린 방탕한 아들이라는 의미죠. 탕부라는 말은 자신이 가진 귀한 것을 아들을 위해 허비한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가 돌아온 아들을 중심으로 읽을 수도 있고,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아버지 집에 머물러 있었던 첫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난 일이 없습니다. 동생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할 때에도 아버지 옆에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재산을 정리해 두 아들에게 나누어 줄 때 첫째 아들도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왜 크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보해 왔습니다. 이는 매우 자명한 사실입니다.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한 사례가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원대한 꿈을 가지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곧 마을을 형성했습니다. 그다음 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5마일 길이의 도로를 건설하자고 제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로 건설 공사는 공공 자금의 낭비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후 청교도들은 황무지 5마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오는 대범한 결정을 한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후에는 작은 마을에 갇혀 평생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크게 생각하는 법을 알지만 리더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생각하는 법을 모른 채 리더인 사람은 없습니다. 크게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으면 공동체는 성장
여호와께 감사하십시오| 창세기 136:1-26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36편은 대표적인 감사의 시입니다. 감사하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으며, 우리 하나님이 선하시며 인자하시다는 고백도 반복됩니다. 감사하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손을 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의 감사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어 감사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성도의 감사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행위로 표현되어 감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온 세상에 증거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선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완전하고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선하다는 말을 처음 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보실 때 좋았다고 기록하는데,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말로 번역된 단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완전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보기에 좋습니다. 모든 일을 완전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이유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우리는 정기적으로 감사의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감사의 절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기적으로 감사의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매일이 감사의 날인데 신약교회에 절기가 왜 필요한가? 감사 절기를 만든 것은 헌금을 더 거두기 위한 꼼수 아닌가?" 감사절기가 헌금을 거두기 위한 꼼수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사람은 반복되는 일에 익숙해지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쾌락적응"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환경과 큰 축복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매일의 감사는 일상의 일이 되고, 어느 날 부터 감사의 감격이 무뎌집니다. 우리가 가진 본성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감사의 날이 필요해집니다. 특별한 감사의 날은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을 새롭게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이룬 일을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 믿고 싶어 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로는 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 | 창세기 4:25-5:3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성경은 가인의 후손들의 역사를 기록한 후 아담으로부터 시작해 셋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기록합니다. 셋은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해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입니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을 셋을 가리켜 아담의 모양과 형상과 같은 사람이라고 기록합니다. 아담의 모양과 형상은 죄로 인해 타락한 형상입니다. 죄로 인해 훼손된 형상이 상속되고 있습니다. 아담과 셋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성경은 이들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매우 단순한 표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셋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역사는 "지내며" "낳았으며" "죽었더라"는 표현으로 설명됩니다. 가인과 그 후손들의 역사를 기록할 때와는 다릅니다. 아담과 셋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살았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계속해서 자녀를 낳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죽음으
생각이 변하기 원한다면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생각이 변하면 운명이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지금 우리의 생각을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이전과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이전과 다른 미래를 기대한다면 지금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첫째, 좋은 정보를 받아들이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정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좋은 정보를 받아들이면 좋은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강연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우리 마음이 좋은 말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좋은 정보를 많이 접할수록 생각의 변화 속도가 빨라집니다. 둘째,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십시오 미래가 바뀌기를 원한다면 만나는 사람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전과 같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이전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사람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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