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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 창세기 3:22~24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범죄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집행입니다. 판사의 판결이 내려진 후에는 그 판결에 따른 집행이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안식하는 복을 받은 사람들이 그 복을 상실했습니다. 복을 상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동산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습니다. 낙원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낙원은 감추어졌기 때문에 신비로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범죄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하실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 살펴 보아야 할 표현 중 하나가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입니다. 이 표현은 범죄한 사람이 선악을 알게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방법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저는 하남교회의 위임받은 목사로서 개혁주의 신학의 정통성과 청교도적 영성을 신앙의 두 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남교회가 신학적으로 정통성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비적 영성에 대한 체험도 공유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건전한 신학과 신비적 영성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둘 중 어느 한 가지만 붙드는 것은 교회를 매우 약하게 만듭니다. 바른 신학과 깊은 영성을 함께 추구할 때 교회는 안전합니다. 청교도들은 고난주간을 특별히 보내려고 힘썼습니다. 고난 주간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다음 날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신 시간까지 이어집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주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금요일 저녁에 성찬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날을 거룩한 금요일이라고 부르며 특별히 금식하며 보내는 어른들도 있었습니다. 고난 주간에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신 고난을 시간 순서를 따
하나님의 부르심과 교회 | 에베소서 4: 1~6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에베소서가 가지는 가치를 말하곤 했습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함이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를 위한 청사진이다" "에베소서는 인간 정신이 낳은 가장 위대한 산물이다" "에베소서는 서신서의 여왕이며 신약성경의 정점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에베소서에 복음의 진리와 교회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고 한 말입니다. 에베소서 4장 1-6절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절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성경구절 중 하나입니다. 교회 생활을 할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제 일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힘써 지키라"는 말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왕과 사는 남자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불황을 맞아 문을 닫는 극장이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영화계도 불황을 피해가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이니, 영화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게 만든 영화가 나왔습니다. 비극적인 생을 살다간 단종의 마지막 생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최근 화제입니다. 장항준 감독은 이 영화로 거장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단종은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어린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어린 왕은 자신의 자리를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있었지만 왕을 지키기에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왕위를 넘겨 주어야 했고, 궁을 떠나야 했습니다. 단종이 궁을 떠나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기록이 많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운 것이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입니다. 어린
죽음 앞에서 부른 생명의 노래 | 창세기 3: 20~21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범죄한 자들에 대한 심판 선언이 완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문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로 이루어져 있지만 의미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아담에게 죽음이 선언되었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복을 받은 사람에게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언이 완결된 후 사람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죽음에 맞서 싸우지만 결국 죽음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죽음과 맞서 싸워 이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 죽음 앞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절망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범죄한 사람들에게 죽음이 선언된 자리에서 구원의 실마리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아 부술 것이라는 약속에서 사람은 구원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아담은 하
사경회 때 주실 말씀을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사경회는 한국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전통입니다. 사경회라는 말은 성경을 살피고 연구하는 모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경회는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오직 성경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사경회는 전통은 구약성경에서도 발견됩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성벽을 재건한 후 광장에 모였습니다. 에스라가 성경을 들고 서서 읽고 가르칠 때 백성들이 듣고 울었습니다. 사경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리는 계시의 책입니다. 기록하여 주신 책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채울 때 신앙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신앙 성장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될 때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들은 날마다 자라야 합니다. 자라기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크고 넓으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매일 성
뒤틀린 질서 | 창세기 3: 16~1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의 심판은 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순서를 거슬러 올라가며 죄에 대한 벌이 선언됩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계속 될 영적전쟁에 대해 말씀하신 후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에게 주어진 말씀은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죄에 대한 벌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결과로 나타나게 될 현상입니다. 1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한 후 출산의 과정이 수고롭고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출산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죠.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여자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출산의 과정을 통해 구원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생육은 창조의 복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창조의 복은 고통 없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하나님의 복이 고통이라는 포장
말은 힘이 있습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물리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죠. 말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에는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실 수 있고,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창조하시는 하나님은 말을 사용해서 그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사람의 말에도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하나님의 말과 같은 전능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의 말은 쇠를 녹이는 힘이 있다는 옛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말을 삼가하고 조심합니다. 자신의 말이 죽이는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하는 거짓말이나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말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말이 상황을 왜곡하고 불신을 조
영적 전쟁이 시작되다 | 창세기 3: 13~15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을 이어가십니다. 아담의 죄를 드러내신 후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죄에 대한 심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범죄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도 아담과 같은 선택을 합니다. 죄가 이미 여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자는 자신을 유혹한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꾀다"는 말은 "속이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속인다는 말은 정보를 왜곡하고 과장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게 마비시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속이는 자는 아름다운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거짓에 마음이 사로잡힌 사람은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릅니다. 거짓에 의해 마음이 잠식당하게 되면 거짓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됩니다. 여인은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것이 아니라 뱀에게 속아서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40대가 많아지는 은혜를 주옵소서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한국교회 인구동향을 살펴보면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40대부터 그 수가 급격히 적어지는 현상을 보이는데, 20대부터는 그 감소폭이 더 커집니다. 수적 감소 현상이 40대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가진 독특함은 30대가 많다는 것인데, 자연스럽게 4세 미만 아동의 수도 평균 이상으로 많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그러나 40대의 경우에는 평균보다 수가 적습니다. 40대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위기의 시기라 할 수 있죠. 직장에서의 생활을 더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여기에서 멈추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50대와 30대 사이에 끼어 자기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힘겨움도 있습니다. 50대와 30대는 완전히 다른 세대이며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세대가 40대입니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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