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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씨 뿌리는 일과 같습니다 | 마태복음 13:1-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전도할 때 결과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 주마다 말씀을 준비해서 전해야 하는 목사도 결과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도의 부담 때문에 전도하는 일을 주저하는 분들에게 오늘 말씀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 중 하나인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와 씨를 뿌리는 방법은 그 지역의 날씨와 관련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은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기간보다 비가 오지 않는 기간이 좀 더 깁니다. 비가 오지 않는 기간 동안 땅이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그 지역은 단단한 바위 위에 흙이 조금 있는 경우가 많아 농사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 농부들은 씨를 뿌
공감은 심리적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공감을 요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불안 지수가 높은 사회 환경의 영향이 큽니다. 가족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을 때에는 공감에 대해 지금처럼 많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공감에 목말라 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평소에 적절한 공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감정에 공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공감은 중요한 정서적 자질입니다. 그러나 공감이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감정을 이해해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어두었던 비밀한 이야기까지 쏟아냅니다. 나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믿고 한 이야기들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이비 종교는 공감을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 | 창세기 4:16-1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당한 이후의 인류는 죄의 본성을 가친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죄는 벗어버릴 수도 없고 떨쳐버릴 수도 없으며 멀리 달아날 수도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죄는 인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예리하게 날이선 칼을 가지고 있어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본성은 죄에 완전히 잠식된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남겨 놓은 아름다운 형상이 아니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지옥으로 치달아가는 급행열차와 같았을 겁니다. 무죄한 동생을 살해한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가인은 땅에서 유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배의 벌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흉악한 죄인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냅니다. 재판은 끝났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에 그려왔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가인은 여호와
죄가 우리 안에 살아있다는 가장 큰 증거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경건함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한 감각이 깨어있습니다. 반면에 경건에 대한 어떤 열망도 없는 신자들에게서는 죄에 대한 감각이 빌견되지 않습니다. 죄가 신자의 마음 속에 살아서 날뛰고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강력한 현상은 죄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감각입니다. 죄는 사람들의 눈을 아둡게 해 죄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죄가 가진 가장 큰 위력입니다. 죄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은 채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누군가 그 일은 죄입니다라고 말하면 당장 나타나는 반응이 있습니다. 변명과 합리화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 주위 사람 때문에, 상황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합리화합니다. 괜찮아.
우리는 다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 야고보서 1:1-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야고보서의 기록자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 믿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 가정에서 자란 가족이라는 관계가 믿음을 갖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인정받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사렛과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죠. 나사렛과 가버나움 역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많은 이적이 행해졌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초기 교회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열두 사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주의 형제라는 특별한 관계가 야고보에게 권위를 부여해주었습니다. 야고보가 초기 교회에서 권위를 가지게 된 이유가 더 있습니다. 야고보는 경건하고 선한 삶을 살아 예
이끄는 사람에게 탁월한 자질이 요구되듯, 따르는 사람에게도 탁월한 자질이 요구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교회의 직분자들은 이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회중들은 따르는 사람이 되겠죠. 따르는 사람들은 이끄는 사람에게 탁월함을 요구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탁월함은 이끄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덕이 아닙니다. 따르는 사람에게도 탁월함이 요구됩니다. 탁월함을 가진 사람이 직분자가 된다고 해서 교회가 저절로 잘되는 일은 없습니다. 회중들이 탁월함을 가지고 함께 할 때 비로서 교회가 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은 따르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이끄는 사람의 동반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분자를 경쟁 상대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비판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자신의 행위를 포장하기도 합니다. 비판이 사라진 교회는 독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하죠. 이런 비판자들로 가득한 교회는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거듭된 비판은 직분자들을 쓰러뜨릴 뿐입니다. 탁
돌이키지 않는 마음 | 창세기 4:9-15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가인은 아담과 하와가 보지 않는 곳으로 동생 아벨을 불러내어 죽였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동생의 몸을 빈 들에 버려둔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아벨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비탄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부모의 슬픔에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가인은 가족의 슬픔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아벨 없는 삶이 편하고 즐거웠습니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사라져버린 세상에 만족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동생 아벨에 대해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아벨을 가리켜 "네 아우"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표현입니다. 아벨은 가인의 동생이었습니다. 원수나 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원수처럼 여겼고,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해를 끼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안수 집사, 권사 선택 투표 후보자를 추천하며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남교회는 직분자 선택 투표를 할 때 후보자를 당회가 추천합니다. 헌법이 정하는 기준을 참고하여 하남교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을 살펴봅니다. 당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는 이유는 기준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가진 기준에 완벽하게 충족하는 사람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다소 부족함이 있더라도 순서를 정해서 후보자로 추천했습니다. 먼저 헌법이 정하는 기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안수집사는 다음 자격을 구비해야 합니다. 1. 35세 이상 66세 미만의 남자 세례교인으로 무흠하게 5년을 경과한자 2. 좋은 명성과 진실한 믿음과 지혜와 분별력이 있는 자 3. 행위가 복음적이고 생활에 모범이 되는 자 4. 본교회에 등록한 후 2년이 경과된 자 권사는 다음의 자격을 구비해야 합니다. 1. 45세 이상 66세 미만의 여자 세례교인으로 무흠하게 5년이 경과한자 2. 행위가 복음에 적합하고 생활에 모범이 되는 자 3. 좋은 명성과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주 안에서 복된 가정 | 에베소서 6:1-4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저는 하남교회 모든 성도들의 가정이 주안에서 복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한 가정들도 있죠. 성도들의 가정들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배우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자녀들이 예배의 자리를 회복해 함께 예배하는 가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주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6장은 가정에서 기억하고 지켜야 할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예배하는 현장에서 시작해 가정과 일터까지 확장됩니다. 예배와 가정과 일터가 일관성을 가질 때 성숙한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아 교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신자들은 가정에서도 주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예배의 복이 가정으로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복된 가정은 순종과 양육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권위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요즘 신생아를 품에 안고 있으면 어디를 가나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출산율이 낮아 마을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귀하다보니 자녀를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녀는 끔쪽이입니다. 금쪽이라는 말에는 귀하다는 의미가 있지만, 버릇없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같이 귀하게 여기는 아이들이 왜 버릇없는 아이가 되었을까요? 아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것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이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함부로 대하면 안되죠. 부모가 가거 말을 사용해 아이들에게 상처주는 일이 많은데, 이는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내 아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말로 하는 학대, 적절할 돌봄이 이루어지지 않은 방치, 물리적 폭력, 모두 범죄입니다. 부모는 마땅히 자녀를 귀하게 생각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맡긴 귀한 생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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