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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를 조심하십시오 | 창세기 6:1-4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2일 전
  • 2분 분량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져 역사를 이어가기 시작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문명의 기초를 만들었고, 아담과 셋으로 이어진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하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종류의 삶에 현저한 차이가 생겼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쌓은 건축물은 점점 견고해졌고 새로운 농기구를 개발해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예배하는 공동체를 형성해 역사를 이어가던 셋의 후손들 중에 문명화된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견고한 건축물과 높은 생산성에 기반한 풍요로운 삶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동맹을 계획했습니다. 이때 일어난 일을 1-2절이 기록합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구별된 삶을 살던 셋의 후손들에게서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셋의 아들들이 가인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에 좋은 대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들이 본 아름다움은 외모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인의 딸들을 아내로 삼게 될 경우 얻게 될 모든 유익에 대해 매력을 느꼈습니다.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동맹입니다. 셋의 아들들은 가인의 후손들이 만든 문명을 보고 매혹되었습니다. 결혼은 가인의 후손들이 만든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결혼의 결과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매우 중요한 것을 잃었습니다. 3절이 그들이 잃은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셋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이 결혼을 통해 섞이게 된 후, 하나님께 하신 말씀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 기록합니다. 이유는 사람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이란 죄의 본성에 이끌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표현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죄의 본성에 이끌리는 상태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영은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과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함께할 때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담은 그릇으로 살기 위해서는 정결해야 합니다. 육신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영을 담은 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셋의 후손들은 가인의 후손들이 만든 문명의 아름다움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는 은혜를 잃어 버렸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현상을 세속화라고 합니다. 세속화의 결과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삶은 죄에 이끌리는 삶이며 생명이 없는 삶입니다. 그 끝은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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