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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창세기 2: 18~25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부부로 시작해 자녀를 낳아 가족이 되고 이웃들과 함께 한 사회를 이루게 됩니다. 창세기 2장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떤 원리로 유지되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입니다.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을 반드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혼자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 없이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 지어졌기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나요? | 창세기 2: 8~1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예수님을 믿고 살다보면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을 것도 아셨을 텐데,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서 아담이 범죄하게 하셨느냐?" 이런 질문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완전하게 만드셨으면 뱀이 유혹했어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아담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으니 아담이 범죄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냐?"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언약의 나무입니다. 언약은 관계를 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웁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고대 근동의 언약이 가지는 목적이었습니다. 주인은 주권자입니다. 모든 것을 뜻대로 할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 여호수아 1:1~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모세의 죽음은 여호수아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목자가 사라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고 있던 그 무거운 책임을 여호수아가 떠안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책임이 자신에게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모세를 통해 준 나의 말을 지켜 행하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 이 말씀이 너의 입을 떠나지 않게 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이 말씀을 묵상하라. 그렇게 하면 너의 길이 평탄하여 형통하게 될 것이다." 홀로 남겨져 두려워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별한 비결 같은 것은 없습니다. 놀라운 지도력이 필요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입에 담아두고 그 말씀과 더불어 행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가 부른 찬양 | 누가복음 1:46~56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전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어린 소녀가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처음 그 복음을 들은 어린 마리아는 두려움과 놀람 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먼 친척인 엘리사벳도 잉태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은 예루살렘 근처 유대 산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사렛에서 유대 마을 산골까지는 일주일 거리입니다. 마리아는 나이든 엘리사벳의 잉태 사실을 확인 한 후 비로소 찬양을 부릅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된 엘리사벳과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수태하게 되었습니다. 두 여인의 만남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었고, 마리아가 부른 찬양은 그리스도께서 이룰 구속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 땅에 오실 구주를 보고 기뻐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의 복 | 시편 1:1~6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현대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 쇠퇴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은 순례자의 길이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구도자라는 단순한 진리를 지금 한국교회는 잊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로 표현하면서 생긴 문제입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삶으로 이어질 때 가치를 가집니다. 믿는 사람들은 순례자이며 구도자입니다. 순례자는 여행자와 다릅니다. 여행자가 즐거움, 휴식, 자기만족을 추구한다면, 순례자는 내적 변화와 깨달음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여 성숙함에 이르는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여행자가 찾아가는 장소와 순례자가 찾아가는 장소가 다릅니다. 여행자는 편안함과 편리함을 기대하지만 순례자는 불편함과 고통을 감
부르신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청지기 | 잠언 25:13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12월입니다. 2025년 마지막 달에 이르렀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면 2026년이 시작됩니다. 12월이 되면 하게 되는 일이 있죠. 새로운 수첩을 사서 이것저것 중요한 것들을 옮겨 적으면서 새 해를 계획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마무리를 잘 하면 시작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12월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감사한 일을 찾아 기록하는 것이 첫 번째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새 해에 해야 할 일의 목록과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글로 표현해 봅니다. 성장을 위한 계획인데, 계획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정말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12월 첫 주일에 섬김의 삶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말씀은 충성된 사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관공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충과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창세기 2:4~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창세기에는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사람의 이름이 나열된 것을 계보라고 부르기도 하고 족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계보는 어떻게 시작되어 역사가 흘러왔는지 보여주는 기록으로 족보와 비슷합니다. 족보가 혈통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면, 계보는 관계의 역사성을 기록한다는 점에 다릅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것은 족보가 아니라 계보입니다. 성경은 혈통의 역사가 아니라 관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내력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를 다른 성경은 "역사"리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내력"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계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 시작합니다. 2장은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모든 것 중 사람의 유례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이는 창세기가 사용하
안식, 복되고 거룩한 삶 | 창세기 2: 1~3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육일 동안 이루어져 안식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했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하신 창조사역이 이루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창세기 2장에 사용된 "안식"이라는 말은 "모든 일을 완수했기 때문에 일을 중단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3절 후반절은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고 번역하는데 이 구절은 "창조의 일을 마무리하신 후 창조하는 일을 그치셨다"는 의미입니다. 안식은 창조사역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혼돈하고 공허했던 세상이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안식에 이르렀습니다. 질서 있는 세상에 생명이 가득하게 되었는데, 그 상태를 성경은 안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안식의 날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 날이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3절 상반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된 날로 구별하셨습니
인생의 쓴물 앞에서 | 출애굽기 15:22~2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북쪽으로 이어진 해변길을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홍해를 지나 서쪽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는 물이 부족하고 해가 뜨거우며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곳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광야에 비유하곤 합니다. 적절한 비유입니다. 인생은 모든 것이 충만하게 준비되어 있는 오아시스가 아니라 부족한 것 투성이인 광야 같은 것을 경험하며 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광야 같은 인생을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광야는 학교이기도 합니다.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광야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광야 학교를 경험하지 않은 채 경건에 이른 사람은 없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긴 광야의 시간을 지난 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 거친 땅 가나안으로의 이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험이 아브라함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 창세기 1:24~31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오늘 우리는 여섯째 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록한 내용을 함께 읽었습니다. 여섯째 날의 창조는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 사역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 위에 있는 생물을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가축, 기는 것, 땅의 짐승이 종류대로 땅에서 나왔습니다. 땅은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장소이면서 모든 생물이 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땅 위의 생물은 땅에서 나와 땅 위에서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나온 가축과 짐승과 기는 것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모든 생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땅 위의 모든 생물을 만드신 후에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만들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작품을 하나님은 여섯째 날 마지막에 만드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른 생물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생물에 관한 특별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셨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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