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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의 하나님을 찬양할지라 | 창세기 9:18-2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지난 주에 우리는 같은 본문을 읽고 노아의 연약함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노아는 의인이며 완전한 자라 칭찬 받았지만, 여전히 연약하고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가 전하는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고, 언약의 대표자로 부름 받았다 할지라도 은혜가 없으면 한 순간도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도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그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경건의 훈련을 받은 사람도 죄인으로 태어난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보아 주실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자제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원하지 않지만 이웃의 수치를 볼 때가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노아는 아버지였고, 언약의 대표자였으며, 공동체의 지도자였습니다. 이를 그대로
얇은 얼음 위를 걷듯 하십시오 | 창세기 9:18-2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며 완전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창세기는 노아를 의인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지만, 로마서는 노아도 의인일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두 문장은 명백한 모순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순에 빠져있다고 말해야 할까요?그럴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순에 빠지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의인이며 완전한 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노아는 무죄한 자나 무결점의 영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의인이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가 가득한 눈길로 노아를 보셨기 때문에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안에 가득한 은혜가 사라진다면 노아는 허물과 죄가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순식간에 드러내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노아의 실체를
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 창세기 9:1-1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창세기 9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말씀은 복에대한 선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있는 모든 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노아에게 같은 복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새롭습니다. 2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두려워한다고 번역된 단어는 경외한다로 번역할 수 있으며, 무서워한다고 번역된 단어는 온 몸이 무너질 정도의 공포를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노아는 생명을 가진 짐승들에게 마치 하나
새 역사의 시작 | 창세기 8:20-2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부패한 세상에 대한 심판이 끝났고 방주의 문이 열렸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모든 짐승들이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가 만난 세상은 하나님의 동산과 같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처음 창조하신 하나님의 동산에는 죄가 없었지만, 노아와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에는 여전히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며 완전한 사람이었지만,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배에서 나온 노아가 처음 한 행동을 보십시오. 새 역사를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노아가 한 첫번째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20절이 그 일을 기록합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성경은 노아가 제사를 드릴 때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제단을 쌓았다는 표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기다리는 노아 | 창세기 8:1-1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날은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열이렛날이었습니다(7:11). 그 날 큰 깊음의 새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습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다 터져나왔고, 땅이 물에 짐기게 되었습니다. 비는 사십 일 동안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물이 땅을 완전히 덮고 있었던 기간은 백오십 일이었습니다(7:24). 노아가 배에서 온 것은 육백일 년 둘째 달수무이렛날입니다(8:14-15). 그러니까 노아가 배에 머물러 있었던 시간은 일 년 하고도 십 일이었습니다. 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부패한 땅을 심판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 "기억한다"고 번역된 단어를 이전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 창세기 7:1-24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노아는 백년 가까운 시간을 거대한 배 만드는 일에 온전히 소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배를 만드는 시간은 고단하고 고독했습니다. 육체적 고단함보다 노아를 괴롭힌 것은 사회적 고립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배 만드는 일을 마무리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배가 완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 언덕 위에 거대한 배가 완성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그 배를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놀랐고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 가족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 데려와 함께 하라. 칠 일이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해 사십 일 동안 지속되어 온 땅이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명 있는 것이 죽게 될 것이다." 배를 만들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다시 노아에게 임했습니다. 이번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
구원받는 믿음이란?| 창세기 6:13-2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인격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라는 가르침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사람이 되기까지 낮아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라는 가르침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전적인 신뢰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전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 앞에 의롭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의 의로움과 완전함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에 노아의 발길이 머믈렀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때 노아도 함께 슬퍼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노아의 삶은 하나님과 깊이 연
백년 후 교회를 생각하고 준비합시다 | 디모데후서 2:1-3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기록한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 중 가장 마지막 성경이 바로 디모데 후서입니다. 디모데 후서를 기록할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었는데, 그 때에는 연금 상태였습니다. 움직임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고, 순교를 예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유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유언장의 수신자가 ‘디모데’입니다. 디모데후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의 황제는 폭군 네로였습니다. 네로에 의해 시작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 중에는 신앙을 버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사역에
세속화를 조심하십시오 | 창세기 6:1-4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져 역사를 이어가기 시작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문명의 기초를 만들었고, 아담과 셋으로 이어진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하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종류의 삶에 현저한 차이가 생겼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쌓은 건축물은 점점 견고해졌고 새로운 농기구를 개발해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예배하는 공동체를 형성해 역사를 이어가던 셋의 후손들 중에 문명화된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견고한 건축물과 높은 생산성에 기반한 풍요로운 삶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동맹을 계획했습니다. 이때 일어난 일을 1-2절이 기록합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구별된 삶을 살던
아버지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 누가복음 15:11-3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이 본문으로 전해진 말씀을 여러 번 들었을 수 있습니다. 탕자비유로 널리 알려진 이 성경 말씀을 탕부비유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탕자라는 말은 아버지의 소유를 허비해 버린 방탕한 아들이라는 의미죠. 탕부라는 말은 자신이 가진 귀한 것을 아들을 위해 허비한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가 돌아온 아들을 중심으로 읽을 수도 있고,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아버지 집에 머물러 있었던 첫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난 일이 없습니다. 동생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할 때에도 아버지 옆에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재산을 정리해 두 아들에게 나누어 줄 때 첫째 아들도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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