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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 창세기 3:22~24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범죄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집행입니다. 판사의 판결이 내려진 후에는 그 판결에 따른 집행이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안식하는 복을 받은 사람들이 그 복을 상실했습니다. 복을 상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동산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습니다. 낙원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낙원은 감추어졌기 때문에 신비로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범죄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하실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 살펴 보아야 할 표현 중 하나가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입니다. 이 표현은 범죄한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나님의 부르심과 교회 | 에베소서 4: 1~6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에베소서가 가지는 가치를 말하곤 했습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함이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를 위한 청사진이다" "에베소서는 인간 정신이 낳은 가장 위대한 산물이다" "에베소서는 서신서의 여왕이며 신약성경의 정점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에베소서에 복음의 진리와 교회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고 한 말입니다. 에베소서 4장 1-6절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절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성경구절 중 하나입니다. 교회 생활을 할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제 일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힘써 지키라"는 말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죽음 앞에서 부른 생명의 노래 | 창세기 3: 20~21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범죄한 자들에 대한 심판 선언이 완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문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로 이루어져 있지만 의미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아담에게 죽음이 선언되었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복을 받은 사람에게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언이 완결된 후 사람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죽음에 맞서 싸우지만 결국 죽음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죽음과 맞서 싸워 이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 죽음 앞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절망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범죄한 사람들에게 죽음이 선언된 자리에서 구원의 실마리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아 부술 것이라는 약속에서 사람은 구원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아담은 하
뒤틀린 질서 | 창세기 3: 16~1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의 심판은 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순서를 거슬러 올라가며 죄에 대한 벌이 선언됩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계속 될 영적전쟁에 대해 말씀하신 후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에게 주어진 말씀은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죄에 대한 벌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결과로 나타나게 될 현상입니다. 1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한 후 출산의 과정이 수고롭고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출산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죠.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여자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출산의 과정을 통해 구원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생육은 창조의 복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창조의 복은 고통 없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하나님의 복이 고통이라는 포장
영적 전쟁이 시작되다 | 창세기 3: 13~15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을 이어가십니다. 아담의 죄를 드러내신 후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죄에 대한 심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범죄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도 아담과 같은 선택을 합니다. 죄가 이미 여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자는 자신을 유혹한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꾀다"는 말은 "속이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속인다는 말은 정보를 왜곡하고 과장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게 마비시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속이는 자는 아름다운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거짓에 마음이 사로잡힌 사람은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릅니다. 거짓에 의해 마음이 잠식당하게 되면 거짓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됩니다. 여인은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것이 아니라 뱀에게 속아서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 | 창세기 3: 9~1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담의 회개를 유도하는 자비로운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초대에 아담은 냉담하게 반응합니다. 아담은 회개할 첫번째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은 여전히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리에 대한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아담은 벗었음을 알고 두려워 숨었습니다. 아담은 처음부터 벌거벗은 상태였습니다. 벌거벘었으나 영광스러웠고 존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 상태로 살면서 하나님과 거리낌 없이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벌거벗음으로 인해 숨었습니다. 벌거벗음이 수치가 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비참한
찾아오시는 하나님| 창세기 3: 8~10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결과는 타락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라는 달콤한 말을 믿었지만 그 믿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속이는 자입니다. 그가 하는 말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본질은 죽이는 독입니다. 쉽게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믿지 마십시오. 모두 거짓입니다. 쉽게 이루어지는 성장은 없습니다. 가벼운 위로, 값싼 은혜는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헛된 약속일 뿐입니다. 아담이 금지된 열매를 먹은 후 타락한 동산에 하나님께서 거니십니다.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평소와 다름 없이 하나님의 동산에 거닐고 계셨습니다. 평화롭고 차분한 발걸음 소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나는 소리에 대해 성경 곳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들은 소리는 발걸음 소리와 비슷했습니다. 금지
권위가 실추되면 나타나는 현상| 창세기 3: 6~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창세기 3장은 죄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죄가 어떻게 일하지 우리는 알게됩니다. 뱀의 모습으로 다가온 악한 영은 먼저 하와를 유혹해 넘어뜨렸고, 그 후에 아담을 넘어 뜨렸습니다. 성경은 거짓 영이 하와를 유혹하는 과정은 자세히 묘사하지만,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된 과정은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하와가 건네는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 아담은 그 곁에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담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하와가 하려는 일을 막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방관했고 침묵했으며 마침내 동조했습니다. 아담의 행위는 너그럽게 말하면 방조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동조입니다
간교함을 분별하십시오 | 창세기 3: 1~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창세기 3장은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내용으로 전환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타락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사람을 넘어뜨리는 악한 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넘어뜨리는지 알려주는데 집중합니다. 이는 악한 영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악한 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악한 영은 뱀을 이용해 여자에게 접근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뱀에 대해 경계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뱀은 여자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였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영은 우리가 친밀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통해 다가옵니다. 우리가 가까이 하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존재를 통해 다가와 시험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를 통해 시험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장 신뢰하는 제자였습니다. 성경은 뱀을 가리켜 "간교하
돕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창세기 2: 18~25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부부로 시작해 자녀를 낳아 가족이 되고 이웃들과 함께 한 사회를 이루게 됩니다. 창세기 2장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떤 원리로 유지되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입니다.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을 반드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혼자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 없이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 지어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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