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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성장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2월 13일
  • 2분 분량



교회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품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생명의 원리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체인 교회는 성장하거나 쇠퇴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멈추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정체는 쇠퇴로 이어지는 길일 뿐입니다. 오래 정체 되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생명체는 결국 소멸하게 됩니다. 교회도 성장하지 않으면 어느 날 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가 모두 좋은 교회는 아닙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성장은 건강한 성장입니다. 기형적인 성장이 있습니다. 생명 원리를 따르지 않는 성장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기형적으로 성장한 교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 원리를 따르는 건강한 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명원리를 따라 성장할 때 교회다운 교회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은 두가지 기준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적 성장과 질적 성장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수적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적 성장만으로 교회 성장을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질적 성장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질적으로 성장하지 않은 채 수적으로만 성장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서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질적으로 성장하면서 수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질적으로 성장한 교회는 수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교회가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할 질적 성장의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그 기준에 맞추어 살펴보면 됩니다. 매우 단순한 기준들인데, 이 기준들은 오랜 세월 교회를 살펴본 결과물들입니다. 우리 교회를 이 기준으로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질적 성장을 이루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에는 여덟가지 질적 특성이 나타납니다.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은사 중심적 사역, 열정적 영성, 기능적 조직, 영감있는 예배, 전인적 소그룹, 필요 중심적 전도, 사랑의 관계가 여덟가지 질적 특성입니다. 우리 교회가 잘 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하남교회 목사로서 우리 교회가 은사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전도에 대한 관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영성이 열정적인가 질문할 때 충분하다고 답하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교회의 성장은 위에 제시된 여덟가지 질적 특성 가운데 가장 낮은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최소치의 원리입니다. 높은 점수를 받은 질적 특성이 있다 할지라도 교회 성장의 수준을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교회 성장은 가장 낮은 질적 특성이 결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단백질을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비타민이 부족하면 병이 생기는 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형식적 조직은 기능적 조직이 되어야 하고, 은사를 가진 사람이 사역하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전도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열정적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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