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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존중하십시오 | 고린도전서 16장 15~18절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에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다른 서신들과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에서 스데바나라는 이름을 가장 먼저 읽게 됩니다. 스데바나라는 이름은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집사 스데반과 같은 이름을 다르게 표기한 것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면류관입니다. 귀한 이름이죠. 

스데바나는 아가야 지역의 첫 열매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가 있는 아가야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처음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스데바나였습니다. 스데바나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고 사도 바울에게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었습니다(고전1:16). 성경은 스데바나가 성도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여 알리고 있습니다. 15절이 이렇게 기록하죠.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스데바나는 성도 섬기는 일에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의 섬김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처음 믿은 사람으로서 사도 바울의 사역을 돕는 동역자가 되었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예배처소로 자신의 집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교회의 모임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성도들의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하는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바나는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것을 따라 종의 모습으로 겸손히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섬겼습니다.

성경은 섬김의 일을 "스데바나의 집"이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집이라는 말은 가족 공동체 전체를 의미합니다. 스데바나의 부부와 자녀들 그리고 그에게 속한 종들 모두를 포함한 가족이 함께 섬김의 일을 했습니다. 스데바나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어었습니다. 스데바나의 집은 온전한 믿음의 가문으로서 고린도교회를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매우 귀한 삶입니다.

스데바나는 먼저 믿은 사람으로서 신실하게 교회를 섬기는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는 교회의 직분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와 관련해서 분명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순종하라는 말은 그 사람의 권위 아래에 자신 둔다는 의미입니다. 질서와 순서에 있어서 그 사람을 내 앞에 혹은 내 위에 두고 나는 그 사람 뒤에 혹은 아래에 두는 것이 순종입니다.

교회는 충성스러운 일꾼들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18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 마음을 알아주라" 알아준다는 말은 그들이 수고한 일과 그들의 신실한 마음을 알고 존중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교회는 충성스러운 일꾼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의심하고 무시하죠. 충성스러운 일꾼이 존중받지 못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예배하며 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누구인지 알고, 그들을 존중하고 따르십시오. 그렇게 할 때 교회와 함께 우리가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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