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도해야 할 성장이란...|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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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오후 성장 위원회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 중에 목사가 말하는 성장이 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적 성장과 수적 성장 중 어느 것을 말하는 것이냐는 의미였습니다. 그 질문을 받고 저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동안 칼럼을 통해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는데 전달이 잘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성장은 질적 성장과 수적 성장 모두입니다. 질적 성장이 없는 수적 성장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수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질적 성장은 허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질적으로 성장하면 수적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수적 성장이 질적 성장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질적 성장은 수적 성장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창조의 원리입니다.
질적 성장을 위해 수적 성장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매 주, 매 년, 수십 년 동안 같은 사람들과 함께 교회 생활하는 교회는 질적으로 성장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성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납하며 적당히 타협하는 관계의 틀이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관계를 다양화하라고 조언합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특히 영적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과의 교제가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새로운 사람과의 교제를 촉진할 수 있을까요? 성장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새가족들은 우리가 섬겨 이 교회에 뿌리내리게 해야 할 사람이며 동시에 우리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같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온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온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오면 지금까지 우리가 형성해온 세계에 균열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형성해온 세계를 유지하려 하면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새로운 세계와 만나 지금까지 견고하게 구축한 우리만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허락할 때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장은 변화를 통해 오기 때문입니다.
나의 세계가 깨어지는 경험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려 몸부림치고 싸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과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서 자신이 구축한 좁은 세계 속에 머물러 살기위해 싸우는 사람을 보면 안쓰럽고 안타깝습니다. 좁은 세계, 안정적인 좁은 관계를 깨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넓은 세계, 새로운 세계와 만나십시오. 그 순간 여러분 앞에 더 깊고 넓은 영적 세계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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