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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하는  태도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2025년 5월 31일
  • 1분 분량



사람들은 모두 죽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지나가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 관문입니다. 죽음이라는 문을 지나치지 않고 영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실을 잊은 듯 살아갑니다. 죽음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다 죽음이 다가오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죽음을 부정합니다. 마치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미국의 작가 윌리엄 사로얀은 죽음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그것이 예외일 거라고 믿었다." 솔직한 표현입니다. 사로얀은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채 살아온 것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 지금은 그를 볼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나의 장례식 장에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상상해보십시오. 그들이 하는 말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입니다. 돈을 사랑한 수전노라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면서 여러 사람에게 영감을 준 현명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죠.

우리가 죽은 후 안타까워하면서 우는 사람이 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지금 삶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거나 죽음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죽음이란 모든 것의 소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오직 이익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한다면 이익만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이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심판하시는 주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살펴보십니다. 우리가 한 말과 행실을 판단하십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이 우리가 고백한 믿음의 증거가 됩니다. 주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의 도리를 따라 살아온 삶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은 칭찬받지만, 말씀을 믿노라 했으나 말씀과 아무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심판받습니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별은 슬픈 일이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별은 피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반드시 경험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잘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오늘 하루의 삶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성실함과 정직함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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