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하늘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15:35-4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부활에 대해 이야기 하면 다양한 질문이 쏟아집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한 일이 있습니다.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었지만 아들 없이 아내를 두고 죽었습니다. 그 여인을 둘째가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둘째도 죽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일곱 형제가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부활이 있다면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이것이 사두개인의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답은 단순합니다. "너희가 성경을 오해하였구나"

고린도교회에도 부활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날 사람은 어떤 몸으로 부활합니까?" 이 질문에 담겨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이 되는데, 이미 흙이 되어 버린 사람의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심이 이 질문 속에 있습니다. 의심하며 묻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답이 이어집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씨앗을 비유로 부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씨는 형체를 잃어버립니다. 형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씨가 깨어져 죽은 후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씨가 깨어진 후 새로운 형체가 나타났습니다.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형체는 땅에 속한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서 상속받은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같은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형체는 짐승의 형체와 다릅니다. 구별이 됩니다. 아담에게서 받은 형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에게서 받은 형체를 가지고 심은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형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구절을 보십시오. 42~43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아담에게서 받은 형체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특징은 부활의 날 얻게 될 형체와 비교할 때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담에게서 받은 형체는 썩을 것이고, 욕된 것이며 약한 것입니다. 부활의 날 우리가 얻게 될 형체는 썩지 아니하며, 영광스러우며 강합니다. 부활의 날 우리가 얻게 되는 형체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형체와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한 형체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형체는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48~49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흙에 속한 이는 첫 사람 아담을 가리키고, 하늘에 속한 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아담의 몸을 입고 산 믿음의 사람은 부활의 날 예수님과 같은 형체를 입게 됩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돕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창세기 2: 18~25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부부로 시작해 자녀를 낳아 가족이 되고 이웃들과 함께 한 사회를 이루게 됩니다. 창세기 2장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떤 원리로 유지되는지 보여줍니다.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나요? | 창세기 2: 8~1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예수님을 믿고 살다보면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을 것도 아셨을 텐데,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서 아담이 범죄하게 하셨느냐?" 이런 질문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 여호수아 1:1~9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모세의 죽음은 여호수아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목자가 사라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고 있던 그 무거운 책임을 여호수아가 떠안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책임이 자신에게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

 
 
 

댓글


  • 블로그-로고-고화질
  • Youtube
  • Instagra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