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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버리셨을까요?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1월 10일
  • 2분 분량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성령이 일하시는 방식에 놀라게 됩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후 시작된 부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수천 명이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이런 일은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의 교회는 순식간에 유대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역전을 이루는데 성공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일대 개혁을 이루어내고 예루살렘을 복음으로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처벌도 가능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를 해산시키고, 사도들의 공회가 예루살렘과 유대를 이끌 수 있는 인적토대가 마련된 상태였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 장악을 시도했다면 예루살렘에 지상 천국이 건설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역사에 흔적이 남을 업적이 되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지상 낙원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급성장한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버리셨습니다. 사도들은 산해드린 공회를 무력화 하는 일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가진 인적 자원을 동원해 핍박자들에 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세운 교회는 무력하게 흩어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건설되었고, 복음은 로마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버리셨을까요? 수천 명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았을까요? 예루살렘 교회가 힘있고 강한 상태로 남아있었다면 로마 제국 복음화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큰 교회가 가진 물적 인적 자원이 효율적인 선교를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양한 질문이 가능하고 그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모두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대한 예루살렘 교회를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하나의 교회가 얼마나 죄에 취약한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수천 명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교회는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물적 자원으로 죄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 물적 자원이 교회를 타락으로 이끄는 올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합니다. 차고 넘치는 물적 자원은 권력의 집중을 초래하고, 권력의 집중은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필연입니다. 권력의 집중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의 스캔들은 가끔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소문이 나지 않을 뿐 많은 목사들이 죄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넘치는 부와 권력에 취하지 않을 정도로 경건한 사람은 없습니다. 수천 수만의 교회를 이룬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런 교회가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 성장에는 분명한 한계가 필요합니다. 한계를 넘어서면 본질이 훼손됩니다. 가난한 지역에 있는 교회라도 300명이 넘으면 돈은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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