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하는 야고보서는 가치가 없는 성경일까?|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우리 교회의 신앙은 종교개혁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의 신앙과 삶을 가치있게 평가합니다. 종교개혁의 깃발을 흔든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가리켜 “지푸라기 같은 성경”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중요한 성경으로 취급했지만 야고보서는 은혜가 아니라 행위를 의지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사역 후반기에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같은 성경입니다. 야고보서도 성령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이기 때문에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다른 진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강조하는 지점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진리를 알게 됩니다. 반면에 야고보서를 읽으면서 구원받는 믿음은 행함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는 진리도 깨닫게 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함께 할 수 없는 신앙의 요소가 아니라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신앙의 요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나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죠. 야고보서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시대에 은혜를 강조하며 방종한 삶을 사는 신앙인들이 존재했던 겁니다. 그들에게 야고보서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행함을 무익한 것이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행함을 강조하기 위해 은혜를 위험한 것이라 표현합니다. 우리는 이 둘 모두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은혜를 강조하는 것만큼이나 은혜받은 사람의 행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은혜와 행함 둘 다를 붙들어야 합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행함이 나타난다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은혜가 행함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 때 진정한 신앙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은 행함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연약함 때문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행함으로 인도하지만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온전한 행함에 이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한 없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 온전히 감사하지 못하고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를 구원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사람은 선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됩니다. 비록 완전하지 못할지라도 선한 삶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이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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