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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모임자료헌금, 부담스러우신가요? | 고린도전서 16장 1~9절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가 다루는 마지막 교훈을 살펴보려 합니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여러가지 신앙적인 논쟁에 대해 성경적 가르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16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하죠. "성도를 위한 연보에 관하여는....", "~에 관하여는"이라는 표현이 고린도전서에 반복됩니다. 고린도교회를 소란스럽게 하는 여러가지 논쟁들이 있었는데, 그 논쟁들 하나하나를 거론하며 답을 제공할 때마다 “~에 관하여는” 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열하고 다투고 있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헌금에 대한 생각차이였습니다.

고린도전서는 헌금에 대해서 말할 때 "명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권위를 가지고 지시하다" 혹은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위임받아 교회들에게 헌금을 지시하고 명령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헌금을 지시하고 명령할 수 있었던 근거는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헌금은 사도 바울이 생각해낸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신앙 공동체의 규례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십일조와 헌물에 대해서 자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에는 중요한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에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는 믿음과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중의 일부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헌금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헌금의 기본정신은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헌금은 거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만큼 드렸으니까 하나님 더 많은 것을 주세요’ 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헌금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거래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값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뿐입니다.

헌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따라 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헌금은 각 사람이 받은 수입에 따라 하는 것이 원리입니다. 성경은 구체적인 액수를 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각 사람이 받은 것에 따라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많은 받은 사람은 많이 하고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합니다. 이것이 헌금의 기본 원리입니다. 수입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입이 없는 사람은 하지 않으면 됩니다. 부담가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헌금은 준비해서 해야 합니다. 2절 후반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계획하지 않고,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은 헌금은 시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준비한다는 말에는 미리 떼어 놓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떼어 놓은 것을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중에 살펴서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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