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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부른 찬양 | 누가복음 1:46~56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전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어린 소녀가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처음 그 복음을 들은 어린 마리아는 두려움과 놀람 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먼 친척인 엘리사벳도 잉태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은 예루살렘 근처 유대 산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사렛에서 유대 마을 산골까지는 일주일 거리입니다. 마리아는 나이든 엘리사벳의 잉태 사실을 확인 한 후 비로소 찬양을 부릅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된 엘리사벳과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수태하게 되었습니다. 두 여인의 만남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었고, 마리아가 부른 찬양은 그리스도께서 이룰 구속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 땅에 오실 구주를 보고 기뻐합니다. 혼인 하지 않은 소녀가 구주를 잉태하게 되었지만 두려움을 잊고 기뻐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기쁨이 두려움을 압도한 이유는 구주께서 베푸실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4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자신을 여종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종은 비천한 존재입니다. 비천하다는 말은 "보잘 것 없다" 혹은 "가난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사람은 한 없이 낮은 자이죠.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의 가난한 소녀였습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당시 사회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 속해 있었습니다. 비천한 소녀가 구주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비천한 여인이 복이 있는 여인이 되었음을 알고 기뻐 찬양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구주께서 하실 일에 대한 묘사로 이어집니다. 51절부터 이어지는 구절을 보십시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마리아는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을 노래합니다. 이 구원의 노래를 역전의 노래라고 부르기도 하고 반전의 노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실 구주께서 교만한 자를 흩으십니다. 권세 있는 자들은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는 높이십니다.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시고 굶주린 자들은 먹여 배불리십니다. 먼저 된 자들은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낮은 종의 모습을 하고 오신 그리스도는 비천한 사람들을 구원하여 존귀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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