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역자를 대하는 회중의 태도| 고린도전서 16장 10~12절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 부산하남교회
- 2025년 8월 16일
- 2분 분량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은 다른 서신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들은 대부분 마지막 부분에 가볍고 친밀한 인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그들에 대한 친밀감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기도 합니다.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은 많은 사람의 이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도 교훈의 말이 지속됩니다. 사람을 소개하는 중에도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강하게 요청하는 말을 이어갑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디모데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들과 동역했는데, 자신이 직접 방문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동역자들을 대신 보내곤 했습니다. 그 일을 도맡아 했던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이면서 동역자로 바울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낼 때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특별히 부탁의 말을 써야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디모데를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10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고린도교회 회중들을 만났을 때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고, 사도 바울을 의심하며 대적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나이어리고 유약한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특히 디모데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위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는 디모데의 유약한 성격과 관련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사용된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전쟁이나 자연재해를 만났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 두려움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인해 경험하는 공포를 의미합니다. 교회 회중들의 태도는 디모데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태도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태도를 통제할 수 없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합당한 태도를 기대하는 것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합당한 태도로 디모데를 영접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회중들은 어떤 태도로 디모데를 대할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디모데를 격멸하고 무시할 수도 있었고, 친절히 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선택은 온전히 회중들의 몫이었습니다. 11절은 구체적인 태도를 사용해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이 구절에 "멸시하지 말고"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하지 말라" 는 의미입니다. 멸시한다는 말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회중들이 사역자를 멸시하면 사역자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교회 회중들이 말씀 사역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씀 사역자의 죄와 태만이 원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경우는 교회의 파당과 뒤틀린 욕망이 원인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합당한 이유 없이 말씀 사역자를 무시하고 격멸했으며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는 파당을 만들어 다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장로들을 파면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무질서와 혼란 속에 역사를 이어가다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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