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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모임 | 요한복음 21장 1~14절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요한복음 21장을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부록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명시하면서 결론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결론을 지었는데 다시 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부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이를 번외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외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번외편이라는 말은 원래 이야기 줄기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라는 의미이고, 외전이라는 말은 기존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이야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의 배경은 갈릴리 호수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은 갈릴리 호수를 디베랴 호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서쪽에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헤롯 안티파스가 만든 도시가 있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를 디베랴 호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 번째 만나게 됩니다.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제자들의 마음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디베랴 호수에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이름이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세베대의 아들들은 야고보와 요한을 말합니다. 다른 두 제자는 누구인지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의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베드로이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베드로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있으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죠. 베드로는 주도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 이전에 하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성경이 그 이유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었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자신도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에서의 삶도 쉽지 않았습니다. 삼년 만에 다시 하는 고기잡이였는데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3절 하반절에 이렇게 기록하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밤 늦은 시간까지 일했습니다. 그런데 잡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철저히 실패한 순간입니다. 제자로 살아온 3년의 삶도 실패로 끝났고, 다시 시작한 고기잡이도 실패로 시작했습니다. 쉽지 않은 삶이었죠. 그 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아침 식사를 직접 준비해주셨습니다. 실패한 제자들을 위해 준비한 모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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