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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게 행동하십시오 | 고린도전서 16장 13~14절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 연수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자책하며 어떻게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손해 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죠. 예수님 믿는 내가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5장부터 7장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아놓았습니다. 우리는 마태가 모아 기록한 부분을 산상설교 혹은 산상 보훈이라고 부릅니다. 산에서 주신 보배로운 가르침이라는 뜻이죠. 그 말씀을 읽어보면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내기에는 너무 높은 차원의 삶을 이야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착한 삶을 살고자 할 때에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착한 삶이 무조건 양보하고, 항상 침묵하고, 어떤 경우든 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 "남자답게" 라고 번역된 부분이 있는데, 남자답게라는 말을 풀어쓰면, "용감하게 행동하라"가 됩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단 한 번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이 스물일곱 권인데, 그 중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모두 열세 권입니다. 사도 바울이 열세 권의 성경을 기록하면서 "용감하게 행동하라"는 이 단어는 단 한 번만 사용했습니다.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 마지막 부분에 애써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지금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의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고,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고 있었으며, 회중들이 여러 분파로 나누어져 심각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순간 회중들에게 필요한 것이 용기입니다.

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양보하고, 침묵하고,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훼손되어 거짓이 활보할 때, 교회가 범죄하고 있을 때에는 양보하고 침묵하고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 아닙니다. 교회가 길을 잃고 흔들릴 때에는 용감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진리를 주장해야 하고, 거짓에 맞서 싸워야 하며, 무너지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 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가 없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보다 더 해로운 것은 참 교사들의 침묵입니다. 악인들이 악한 행실보다 교회를 더 해롭게 하는 것은 신실한 신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이 고린도교회를 정렴할 수 있었던 것은 착한 사람들이 침묵하고, 희생하고,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들이 침묵하고 희생하고 양보하는 동안 범죄한 자들이 교회를 지도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장로들이 파면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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