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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선지자가 말하는 그 날에 담긴 의미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는 "그 날"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 날"은 미래의 어떤 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날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 속에 등장하는 그 날 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면 성경에 담겨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은 인간의 모든 교만이 무너지는 심판의 날입니다. 고대 근동의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무력과 지혜를 의지했습니다.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 제국을 건설한 자들은 하늘까지 높아졌습니다. 제국의 건설자들은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습니다. 그 날은 높아진 인간의 교만이 철저히 낮아지는 날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을 대적해 높아진 모든 것은 낮아지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 만백성을 다스리시는 주이십니다. 그
부산하남교회
4일 전2분 분량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칭호에 담긴 의미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다양한 호칭으로 부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호칭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주라는 호칭이 처음 성경에 등장한 것은 사무엘서입니다. 사무엘상 1장 3절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후 주전 800-600년 사이에 활동한 선지자들의 글에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호칭이 자주 발견됩니다. 두 시대에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시대는 블레셋의 위협을 비롯한 주변 나라들의 침략과 지배가 반복되었고, 주전 800년 이후 선지자들의 시대에도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만군"이라는 말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열방의 군대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나라의 군대 뿐 아니라 천상에 있는 천군과 천사들을 포함하는 말이 "만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이 말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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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전2분 분량
웃시야는 오만한 폭군이었을까? 경건하고 현명한 군주였을까?|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웃시야는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 오십이 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웃시야가 왕이 될 때 그의 곁에는 선지자 스가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는 웃시야 왕의 멘토가 되어 선한 길로 인도했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선지자의 지도를 받으며 경건하고 신실한 군주로 살아가게 됩니다. 웃시야가 다스리는 동안 국가질서가 확립되었고, 농업 생산성도 향상되었습니다. 황무지에 우물을 파서 가축을 기르고 작물을 가꾸었습니다. 군사적으로 탁월해 블레셋과의 전투에 연이어 승리해 다윗과 솔로몬의 때의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외교력을 발휘해 암몬으로부터 조공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요새를 건설해 국경을 튼튼히 했고, 삼십만에 이르는 정예 병사를 양성해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습니다. 웃시야가 다스리는 동안 유다는 군사적 안정을 기반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웃시야 왕의 다스림으로 인해 유다는 다윗과 솔로몬 이후 가장 번영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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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1분 분량
이사야서가 말하는 남은 자는 어떤 사람일까?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이사야서 1장 9절에 "생존자"라는 단어는 "남은 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남겨진 무리" "피한 자"등으로 표현된 단어들은 "남은 자"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남은 자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남은 자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유다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죠.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벌하고 다시 정결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심판을 통과하고 남은 자들은 정결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고 남은 자들은 거룩한 씨와 그루터기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사야서 6장 13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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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1분 분량
왜 크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보해 왔습니다. 이는 매우 자명한 사실입니다.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한 사례가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원대한 꿈을 가지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곧 마을을 형성했습니다. 그다음 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5마일 길이의 도로를 건설하자고 제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로 건설 공사는 공공 자금의 낭비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후 청교도들은 황무지 5마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오는 대범한 결정을 한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후에는 작은 마을에 갇혀 평생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크게 생각하는 법을 알지만 리더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생각하는 법을 모른 채 리더인 사람은 없습니다. 크게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으면 공동체는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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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2분 분량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이유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우리는 정기적으로 감사의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감사의 절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기적으로 감사의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매일이 감사의 날인데 신약교회에 절기가 왜 필요한가? 감사 절기를 만든 것은 헌금을 더 거두기 위한 꼼수 아닌가?" 감사절기가 헌금을 거두기 위한 꼼수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사람은 반복되는 일에 익숙해지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쾌락적응"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환경과 큰 축복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매일의 감사는 일상의 일이 되고, 어느 날 부터 감사의 감격이 무뎌집니다. 우리가 가진 본성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감사의 날이 필요해집니다. 특별한 감사의 날은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을 새롭게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이룬 일을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 믿고 싶어 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로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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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2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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