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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하나님의 형상 | 창세기 3: 9~12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담의 회개를 유도하는 자비로운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초대에 아담은 냉담하게 반응합니다. 아담은 회개할 첫번째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은 여전히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리에 대한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아담은 벗었음을 알고 두려워 숨었습니다. 아담은 처음부터 벌거벗은 상태였습니다. 벌거벘었으나 영광스러웠고 존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 상태로 살면서 하나님과 거리낌 없이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벌거벗음으로 인해 숨었습니다. 벌거벗음이 수치가 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비참한
우리가 기도해야 할 성장이란...|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지난 주일 오후 성장 위원회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 중에 목사가 말하는 성장이 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적 성장과 수적 성장 중 어느 것을 말하는 것이냐는 의미였습니다. 그 질문을 받고 저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동안 칼럼을 통해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는데 전달이 잘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성장은 질적 성장과 수적 성장 모두입니다. 질적 성장이 없는 수적 성장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수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질적 성장은 허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질적으로 성장하면 수적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수적 성장이 질적 성장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질적 성장은 수적 성장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창조의 원리입니다. 질적 성장을 위해 수적 성장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매 주, 매 년, 수십 년 동안 같은 사람들
찾아오시는 하나님| 창세기 3: 8~10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결과는 타락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라는 달콤한 말을 믿었지만 그 믿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속이는 자입니다. 그가 하는 말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본질은 죽이는 독입니다. 쉽게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믿지 마십시오. 모두 거짓입니다. 쉽게 이루어지는 성장은 없습니다. 가벼운 위로, 값싼 은혜는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헛된 약속일 뿐입니다. 아담이 금지된 열매를 먹은 후 타락한 동산에 하나님께서 거니십니다.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평소와 다름 없이 하나님의 동산에 거닐고 계셨습니다. 평화롭고 차분한 발걸음 소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나는 소리에 대해 성경 곳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들은 소리는 발걸음 소리와 비슷했습니다. 금지
교회 성장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교회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품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생명의 원리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체인 교회는 성장하거나 쇠퇴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멈추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정체는 쇠퇴로 이어지는 길일 뿐입니다. 오래 정체 되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생명체는 결국 소멸하게 됩니다. 교회도 성장하지 않으면 어느 날 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가 모두 좋은 교회는 아닙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성장은 건강한 성장입니다. 기형적인 성장이 있습니다. 생명 원리를 따르지 않는 성장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기형적으로 성장한 교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 원리를 따르는 건강한 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명원리를 따라 성장할 때 교회다운 교회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은 두가지 기준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적 성장과 질적 성장입니다. 우리는 대부
권위가 실추되면 나타나는 현상| 창세기 3: 6~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창세기 3장은 죄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죄가 어떻게 일하지 우리는 알게됩니다. 뱀의 모습으로 다가온 악한 영은 먼저 하와를 유혹해 넘어뜨렸고, 그 후에 아담을 넘어 뜨렸습니다. 성경은 거짓 영이 하와를 유혹하는 과정은 자세히 묘사하지만,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된 과정은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하와가 건네는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 아담은 그 곁에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담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하와가 하려는 일을 막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방관했고 침묵했으며 마침내 동조했습니다. 아담의 행위는 너그럽게 말하면 방조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동조입니다
교회에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는 권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품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권위는 폭력적이었고 파괴적이었으며 비인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권위는 병든 권위였습니다. 성경은 권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앙공동체에 권위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사사기는 권위가 실종된 시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권위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따라 살게 됩니다. 그 결과는 혼돈과 공허죠. 권위는 계급이나 지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권위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성도들을 보호하며,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요구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권위가 사라지면 혼란이 시작되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보호받지 못하며, 영적 성장을 경험하는 일이 힘들어집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집중하며 헌신하는 모습도 보기어렵죠. 권위가 사라진 교회는 인간적인 모습을 띄게 됩니다. 성도들의 모임은 세상 사람들의 모임과 구별할
간교함을 분별하십시오 | 창세기 3: 1~7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창세기 3장은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내용으로 전환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타락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사람을 넘어뜨리는 악한 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넘어뜨리는지 알려주는데 집중합니다. 이는 악한 영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악한 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악한 영은 뱀을 이용해 여자에게 접근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뱀에 대해 경계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뱀은 여자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였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영은 우리가 친밀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통해 다가옵니다. 우리가 가까이 하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존재를 통해 다가와 시험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를 통해 시험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장 신뢰하는 제자였습니다. 성경은 뱀을 가리켜 "간교하
제직들이 말씀과 교회의 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제직들은 말씀과 교회의 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의 안수집사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교회법을 읽고 있습니다. 교회법을 읽는 이유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제직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교회의 법에 무지하면 교회를 바르게 건설할 수 없습니다. 상식을 따르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상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법은 필요하지 않겠죠. 법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마다 주장하는 상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할 때에 상식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고 무례한 일입니다. 누군가 말하는 상식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을 이야기 할 때에는 먼저 성경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교회의 법을 살펴야 합니다. 상식이나 인정을 앞세우게 되면 길을 잃을 수 밖에 없ㅅ습니다. 자기만의 상식이나 인정을 앞세워 교회를 혼
돕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창세기 2: 18~25 | 구역모임자료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부부로 시작해 자녀를 낳아 가족이 되고 이웃들과 함께 한 사회를 이루게 됩니다. 창세기 2장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떤 원리로 유지되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입니다.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을 반드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혼자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 없이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 지어졌기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버리셨을까요? | 목회칼럼 | 하남교회 | 윤길주 목사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성령이 일하시는 방식에 놀라게 됩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후 시작된 부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수천 명이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이런 일은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의 교회는 순식간에 유대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역전을 이루는데 성공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일대 개혁을 이루어내고 예루살렘을 복음으로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처벌도 가능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를 해산시키고, 사도들의 공회가 예루살렘과 유대를 이끌 수 있는 인적토대가 마련된 상태였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 장악을 시도했다면 예루살렘에 지상 천국이 건설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역사에 흔적이 남을 업적이 되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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